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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157

"한국의 사계절 vs 캘리포니아의 안정된 기후, 어느 날씨가 더 좋을까?"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엔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가을엔 단풍이 들고, 겨울엔 눈이 내린다. 이 계절의 순환은 마치 인생의 흐름 같아서, 우리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고 살아간다.그러던 내 생각이 흔들린 건 여동생이 정착한 미국 캘리포니아를 찾았을 때였다. 처음에는 ‘사막 기후’라는 말에, 끝없이 뜨겁고 메마른 풍경만을 떠올렸다.하지만 내가 마주한 그곳의 날씨는 전혀 달랐다.하늘은 하루도 빠짐없이 푸르고, 공기는 건조했지만 탁하지 않았다.낮엔 햇볕이 강하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신기할 정도로 시원했다. 에어컨도, 난방도 크게 필요 없는 일상.비가 거의 오지 않으니 우산도, 장화도 필요 없다.그곳.. 2025. 6. 6.
"고요한 밤, 시를 읽던 소년의 기억" 늦봄의 어느 밤이 문득 떠오른다.고등학교 시절, 하루를 마무리하던 그 고요한 시간. 대청마루에 앉아 시집을 펼쳤다.마당에서는 개구리 울음이 끊이지 않았고, 바람이 발목을 간질였다.세상은 잠든 듯 조용했고, 나는 또박또박 시를 읽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김광섭의 시를 읊조리다 보니, 낯선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퍼졌다.사춘기였던 나는 그 문장들 안에서 처음으로 ‘시간’이라는 감정을 느꼈다.지나가는 것, 남는 것, 그리고 잊히는 것들.어머니는 방 안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셨고, 나는 마루 끝에서 나직이 시를 읊었다.아마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방 안에 스며들었을지도.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그 조용한 밤이 얼마나 소중한 기억이 될지.이제는 마루 대신 책상 앞에 앉는다.시 대신 수필을 쓰고, 낭독 대신 자.. 2025. 6. 5.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인생은 누구의 뜻대로 흘러가는 걸까.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게 내 맘처럼 되진 않는다.때론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포기한다고 해서 덜 아픈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느낀다.세상일은 정말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나는 누구의 뜻대로 살아가는 걸까?우연처럼 떠밀려 살고 있는 걸까?아니면 이미 누군가 짜놓은 시나리오를 따라가고 있는 걸까?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천둥이 치면 움츠러들고,나는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걸까.어쩌면, 우리는 모두‘흔들리는 삶’ 속에서 중심을 찾으려 애쓰는 갈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진리를 알고 싶다.오죽했으면 공자는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을까.하지만 도는 그렇게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삶은 답을 주지 않는다.대신 수많은 질문만 남긴다. "왜.. 2025. 6. 4.
"우울증을 이겨내고 다시 교단에 섰던 이야기"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다.”그 말은 오랫동안 상식처럼 받아들여졌다.열 살 버릇 여든 간다든지, 한 번 굳어진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들. 살아보면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하지만 나는 안다.사람은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다시 설 수는 있다.그리고 그 ‘다시 섬’이야말로 인생의 진짜 힘이다. 대학 입시에 떨어졌던 그 겨울,나는 내 안의 희망이 꺼졌다고 느꼈다.친구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던 시기에나는 멈춰 선 기분이었다.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람은 열 번 다시된다.” 그 말은 위로처럼도, 허황된 말처럼도 들렸지만이상하게도 조용히 마음속에 남았다.그리고 훗날,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그 말은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나는 교사가 되었다.아이들과 숨 쉬며 배.. 2025. 6. 3.
"외롭지만 자유로운 도시, 그 고독이 편안한 이유" 퇴근하던 겨울 저녁이었다.현관 앞에서 누군가 쓰러져 있는 걸 보았다.초면인 노인이었다.아무 망설임 없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날 밤, 아무 일 없던 듯 복도는 조용했다.누구도 알지 못했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그런데도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소리 없는 선행이 나를 조용히 위로해주었다. 도시는 흔히 차갑다고들 한다.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아파트 복도를 지나며 이름을 묻는 일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무심한 도시가 좋다.그 거리감이 오히려 나를 숨 쉬게 한다.누군가 나를 쳐다보지 않아도 괜찮고,누군가에게 내 일상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누군가 잘난 척을 해도, 나는 내 속도로 살아간다. 이 무관심은 때때로 존중이 된다.누구도 내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누가 뭘 타고, 뭘 입고 다니.. 2025. 6. 2.
아빠! 우리집 바둑이 어디갔어요? 어릴 적 여름, 마을 어귀에선 늘 짙은 고기 냄새가 코끝에 붙었다.무쇠솥에서 피어오르던 김, 푹 익은 고기의 냄새, 국자에서 떨어지던 육수 소리.나는 종종 외할아버지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이건 사람 기운을 북돋우는 음식이야."삶에 찌든 말투였지만, 어딘가 단호했고 신념이 배어 있었다.그 한 그릇을 위해 삶을 견디고, 계절을 건넌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엔 고기가 귀했다.소는 농사 짓는 데 쓰였고, 돼지는 제삿날이나 되어야 겨우 상에 오르곤 했다.시장에도 흔히 있는 건 콩이나 멸치뿐이었고, 닭 한 마리 잡는 일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그런 시절에 개는, 안타깝게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이었다.영양이라는 말조차 사치 같던 그때, 개고기는 최고의 단백질원이자 마지막 생존의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 2025.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