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아 더 진짜인 것들」
요즘, 내 마음은 바람 같다.눈에 보이지 않지만, 스쳐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다.때로는 빛처럼 따스하고,때로는 그림자처럼 서늘하다. 아침엔 괜찮다가,낮엔 이유 없이 가라앉고,저녁엔 말이 많아진다. 왜 그럴까.내 마음인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말을 걸면 고개를 돌리고,달래면 더 깊이 숨는다.마음은 바람처럼 불다가, 멈췄다가,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아선다.내가 아니라고 말해도,마음은 이미 다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카페 유리창 너머,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다문득, 눈물이 났다.아무 이유 없이.그냥, 마음이 그랬다.“슬프지 말자.” 해도슬픔은 속삭이듯 찾아오고,“잊자.” 해도기억은 더 또렷해진다. 마음을 부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몇 번이나 생각했다.하지만 마음은,기계가 아니다.그래서 울음은 더 진짜..
2025. 5. 27.
소무의도 산책과 물회 한 그릇, 여름이 시작되었다
아직 5월 중순인데, 햇살은 벌써 여름을 닮았다.바람 끝에도 봄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따가운 기운이 먼저 느껴진다.그럴 때였다. “이번 주 토요일, 영종도로 물회 먹으러 가자.”오랜 친구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장소는 바다 가까운 물회집, 이름도 근사했다. 선녀풍.마치 선녀들이 바닷물로 회를 말아주는 듯한 이름.웨이팅이 길다던 말도 설레게 들렸다. 도착한 물회는 바다 그 자체였다.넓은 유리 그릇에 담긴 육수는 짙푸르고 시원했다.생선회는 오이, 배, 미역 사이를 유영하듯 흩어져 있었고,그 위로 고소한 참기름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한입.혀끝이 먼저 놀라고, 속이 서늘해지고, 머릿속까지 맑아졌다.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입 안에서 여름이 깨어났다.어릴 적 바닷가가 떠올랐다.발에 모래를 묻히고 조..
2025. 5. 25.
“닫힌 문 앞에서, 나는 멈췄다”
– 문은 닫혀 있었고, 나는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나도 그랬다.언젠가 도착할 줄 알고, 오늘을 견디며 달렸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일상은 늘 허탕 쪽이었다.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들.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어떤 것들. 내가 다니는 병원이 있다.멀다. 편도 한 시간 넘게 걸린다.그래도 간다.그곳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분이다.진단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그런 사람. 그날도 그랬다.바쁜 평일, 빗길을 뚫고 병원에 도착했다.문은 닫혀 있었다.유리문에 붙은 종이 한 장, “휴진입니다.”순간 멍해졌다.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기대, 피로, 자책이 섞여 있었다.진료카드를 쥔 손에 힘이 빠졌다. ‘또 허탕이구나.’ 돌아오는 차 안, 빗소리만 들렸다.라디오는 ..
2025.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