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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157

소갈머리 없는 벤뎅이가 건네준 말 시장 골목, 젓갈 가게 앞을 지나다 무심코 멈춰 섰다.투명한 봉지 안에 빼곡히 눌린 벤뎅이젓.소금물 속에 절여져 몸을 구긴 채 쌓여 있는 그것들을 바라보는데,문득 가슴 한쪽이 찡해졌다. 작은 생선 하나가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 줄은 나도 몰랐다. 벤뎅이는 흔한 생선이다.작고, 연약하고, 심지어 속이 비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 없는 놈”이라며 가볍게 부른다.뼈째 씹히고, 값싸게 팔리고, 흔하게 소비된다.겉보기에 별 의미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오히려 그런 ‘속 없음’이 나에게는깊은 물음으로 다가왔다. 비어 있다는 건, 정말 없는 걸까?아니면 그만큼 감춰두었다는 뜻일까? 사람도 그렇다.속을 보이지 않는 사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자주 “속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나는 안.. 2025. 6. 24.
“부부싸움 후, 말없이 나눈 라면 한 그릇” 부부로 산다는 건 하늘을 닮았다.매일 마주하지만, 똑같은 날은 없다. 어떤 날은 햇살처럼 따뜻하고,어떤 날은 이유 없이 흐리다.그렇다고 하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아내와 다퉜다.사소한 이유였다.퇴근길에 사 오기로 한 반찬을 깜빡한 것. "왜 이런 것도 못 챙기냐"는 말에나도 모르게 버럭했다.서로 말이 오가다, 결국 등을 돌렸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침묵은 집 안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한참이 지나도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그날 밤, 빗소리가 창문을 때렸다.소파에 기대 앉아, 멍하니 창밖을 봤다. ‘이게 정말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머릿속에서 되뇌다, 부엌에서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아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그녀는 나를 보며 짧게 말했다. “먹을래?” 나는 고개를.. 2025. 6. 23.
조용히 나를 지켜내는 법: 간결한 삶의 힘 몇 해 전, 비 오는 봄밤이었다.회식 자리에서 술이 돌았고, 나는 조용히 물잔을 들었다.괜찮다고, 이게 좋다고 말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단단했다.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오는 길, 축축한 신발과 달리 마음은 개운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적당히 살아도 괜찮다'는 걸. 요즘 나의 하루는 단정하다.창을 열고 바람을 맞는다.따뜻한 물 한 잔, 간단한 식사.집 앞을 걷는 짧은 운동. 이 작은 루틴이 나를 깨운다.세상도, 나도 조용하다. 직장에선 묵묵히 일한다.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니까. 가끔 스스로 묻는다."이 일이 정말 의미 있나?"그러다 동료의 한마디, 고객의 고마움이 나를 붙잡는다. 욕심은 줄이고, 기대도 덜한다.실망도, 비교도 줄었다.무언가를 .. 2025. 6. 22.
알콩달콩이라는 특별한 삶 이야기 비 오는 저녁, 두부 한 모와 미역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아이가 좋아하는 국을 끓여야 했다.평범한 날, 익숙한 일.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이런 게 내가 바라던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알콩달콩이란 말이 싱겁게 느껴졌다.크게 웃기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삶.나는 더 크고 화려한 것을 꿈꿨다.성공, 명예, 멋진 자리.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자주 비었다. 살면서 알게 되었다.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오해가 쌓이고, 말이 가시가 되고,사랑했던 사람도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날이 많아진다. 그러다 문득 식탁에 앉아 마주 본다.된장국 냄새, 아이의 웃음소리,아내의 조용한 눈빛.그것들이 나를 다시 세운다. 알콩달콩은 그냥 평온한 삶이 아니었다.흔들려.. 2025. 6. 21.
"정말 그놈이 그놈일까?", "사랑, 왜 사람마다 다를까?" “남자는 다 늑대야.” 이 말, 평생 안 들어본 남자는 없을 거다.실연당한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흔히 던지는 말.웃으며 넘기지만… 나는 가끔 묻는다. “그 늑대랑 있었던 건 누구였을까?” 바람을 피운 남자가 있다면,그와 몰래 만난 누군가도 있는 법이다.누군가는 배신당하고, 누군가는 설레고.이중에 누가 더 나쁜지, 나는 쉽게 말 못 하겠다. 사랑은 원래 그렇게 엇갈린다.같은 사람이 누군가에겐 전부지만,또 다른 이에겐 도저히 못 견딜 존재가 된다. 예전에 나도 그런 관계를 끝낸 적이 있다.“너 같은 인간이랑은 못 살겠어”라는 말까지 들으며.그런데 몇 달 뒤,그 사람은 다른 남자와 행복한 얼굴로 사진을 올렸다.그걸 보며 생각했다. "내가 못 맞춘 퍼즐 조각을, 누군가는 딱 맞게 끼웠구나." 요즘은 드라마 속 순.. 2025. 6. 20.
“물은 아래로만 흐르지 않는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다.싱크대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방울이조금씩 스테인리스 표면을 두드리며 만든 둥근 울림을.물은, 그렇게 조용히 세상을 흔든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고 배웠다.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나도 그렇게 살았다.몸을 낮추고, 말끝을 흐리고, 가능한 한 덜 튀는 방향으로. 물은 그게 옳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풀뿌리를 적시고, 나무 뿌리에 스며들고, 자갈 틈을 지나다정한 기척으로만 존재하는 물.나는 그게 ‘지혜’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빗방울이 증기로 솟구쳐햇살 속에서 반짝이던 순간,나는 알았다.물이 위로도 흐른다는 걸. 보이지 않는 물기둥,그것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일 수도,숨죽였던 소망일 수도 있다.물은 솟는다.산꼭대기에서도, 벌어진 틈에서도,누구도.. 2025.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