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수필157 바다의 기억, 소래 포구에서 찾은 삶과 추억 포구는 언제나 사람의 목소리와 파도의 숨결이 뒤섞이는 자리다.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지만, 그 자리에 늘 머무는 듯 보인다. 사람도 그렇다.떠나고 돌아오며 흔들리지만, 결국은 남는 자리가 있다.소래 포구를 찾을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비릿한 내음은 바닷물의 냄새만이 아니다.그것은 바다를 향해 평생을 던져온 사람들의 땀과 체취다. 허리를 굽히고 손끝이 다쳐도 매일같이 그물을 당겨 올리는 사람들의 생이다.그들의 얼굴에는 파도에 오래 씻긴 돌멩이 같은 단단함이 묻어 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따라간 포구의 풍경. 거대한 새우젓 통에서 넘쳐흐르던 소금물,어깨보다 높게 쌓인 생선 상자,손님을 향해 외치던 상인의 목소리. 그 사이에서 어머니는 값 흥정을 하며 눈빛으로 .. 2025. 9. 10. 낙엽은 어디로 가는가: 잎사귀의 거처와 우리의 삶 산정의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를 본다.햇빛을 잔뜩 머금어 눈부신 초록빛을 내뿜다가도,갑작스레 몰아친 바람 앞에서 금세 뒤틀리고 흔들린다. 그 떨림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다.오래도록 뿌리에서 밀려온 기운,계절마다 품어온 햇살,그리고 다가올 이별의 그림자까지 함께 흔들린다. 여름날, 잎은 쉼 없이 자신을 태운다.햇살을 삼키고, 빗방울을 받아내어 맑은 물줄기로 돌려보낸다.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소리 없는 합창을 이어간다. 숲이 숨 쉬는 듯한 그 합창은사실 하나하나의 잎이 내어놓은 호흡이다.스스로를 빛내기보다타인을 살리기 위해 흔들리는 삶. 가을이 기울면, 잎은 제 몫을 다한 듯 서서히 힘을 뺀다.바람의 손길에 매달렸다가어느 순간 조용히 그 자리를 벗어난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낙엽이겠지만,그 순간은 귀향의 춤이다... 2025. 9. 8. 휴일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 혼자 있는 시간의 위로 일요일 아침.창문을 스치는 바람에 눈이 살며시 떠진다. 평일보다 두 시간은 늦게 일어났건만,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잔잔한 피로가 남아 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몽롱한 시간. 다행히 오늘은 아무런 약속도 없다.달력 위에 ‘공백’처럼 남은 하루. 오늘만은,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이탈하고 싶다. 주방에서 커피를 내린다.김이 피어오르고, 구수한 향이고요한 거실에 천천히 번진다. 아무도 없는 이 공간.누구에게도 말 걸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좋다. 학교에선 늘 누군가의 질문을 듣고,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다. 강의실 안의 침묵조차도누군가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 공간. 나를 숨기기 어려운 곳. 하지만 지금은,숨겨도 괜찮다.아니,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창밖에서 아이들 웃음소.. 2025. 9. 6. 좌식문화는 사라지고 있을까? 입식문화로 바뀌는 우리의 일상 요즘 좌식 음식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한때는 방바닥에 둘러앉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대부분 의자에 앉는 입식 식당이다. 무릎이 불편한 노인을 배려한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은 생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앉는 법이 달라지면 삶도 달라진다.그래서 좌식과 입식을 이야기하는 건 단순히 의자와 밥상의 문제가 아니라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사람은 앉는 법을 닮는다.몸을 낮추면 서로 가까워지고, 허리를 세우면 각자 자리를 지킨다.좌식과 입식은 생활 방식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대하는 두 풍경이다. 나는 어릴 적 시골 외갓집에 가면 먼저 방바닥에 드러눕곤 했다.구들장이 데워주는 온기가 등줄기를 타고 오르면 마음까지 느슨해졌다. 저녁 무렵이면 어른들이 둥글게 모여 밥상을 폈다.반찬은 누구의 것이 따로 .. 2025. 9. 4. 가을엔 커피 한 잔, 그리움이 향기로 번지다 가을이면 문득 코끝이 허전하다. 예전에는 낙엽 타는 냄새가 골목마다 스며들었다.은근하고 구수한 연기 속에는 유년의 기억이 함께 타올랐고,그 옆에 서 있노라면 마음까지 데워졌다. 이제는 도시에서 그 냄새를 맡기 어렵다.낙엽은 봉투에 담겨 사라지고,골목의 연기와 함께 추억의 길목도 닫혔다. 그 대신, 가을을 알리는 향은 커피에서 온다.노랗게 물든 가로수 아래,종이컵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향기. 그것은 더 이상 고향의 연기는 아니지만,묘하게 그리움의 결을 닮았다. 커피는 가을의 불씨다. 바람에 흩날린 잎새가 발끝을 스칠 때,잔 속에서 김이 피어오르면잃어버린 장면들이 되살아난다. 마치 꺼진 자리에서 작은 불꽃이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단풍길 벤치에 앉아,친구와 종이컵을 나눠 든 장면을. 굳.. 2025. 9. 2. 로봇이 다 해주는 세상, 사람은 무엇을 남길까 아내를 퇴근길에 맞이해 차에 태웠다.지친 얼굴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회사와 집 사이의 짧은 거리가, 때론 끝없는 고갯길처럼 보이는 날이 있다.그날도 그랬다. 차를 몰아 자동세차기에 들어섰다.거대한 솔이 회전하며 차체를 휘감았다.물줄기가 와르르 쏟아지고, 거품이 차창을 덮었다. 그 순간, 아내가 중얼거렸다. “아~ 피곤해, 사람도 자동세차처럼 씻겨주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목욕탕 가면 세신사 있잖아.”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른 사람이 내 몸을 만지는 건 싫어. 그냥 기계가 알아서 해주면 좋겠어.” 거품이 흘러내리며 시야를 가렸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마 곧 로봇이 목욕을 시켜줄 거야.옛날 왕을 궁녀들이 씻겨주던 것처럼,이제는 로봇이 대신해주겠지.” 아내는.. 2025. 8. 31. 이전 1 2 3 4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