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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아빠! 우리집 바둑이 어디갔어요?

by 선비천사 2025. 6. 1.

 

 

어릴 적 여름, 마을 어귀에선 늘 짙은 고기 냄새가 코끝에 붙었다.
무쇠솥에서 피어오르던 김, 푹 익은 고기의 냄새, 국자에서 떨어지던 육수 소리.
나는 종종 외할아버지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건 사람 기운을 북돋우는 음식이야."
삶에 찌든 말투였지만, 어딘가 단호했고 신념이 배어 있었다.
그 한 그릇을 위해 삶을 견디고, 계절을 건넌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엔 고기가 귀했다.
소는 농사 짓는 데 쓰였고, 돼지는 제삿날이나 되어야 겨우 상에 오르곤 했다.
시장에도 흔히 있는 건 콩이나 멸치뿐이었고, 닭 한 마리 잡는 일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런 시절에 개는, 안타깝게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단백질이었다.
영양이라는 말조차 사치 같던 그때, 개고기는 최고의 단백질원이자 마지막 생존의 선택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절에도 개는 ‘이름 있는 존재’였다.
‘메리’, ‘칠복이’, ‘베스’처럼 다정한 이름을 불렀고,
비 오는 날이면 개집 지붕에 덮개를 씌워주고, 밥그릇에 따뜻한 국을 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름 붙인 그 개가
어느 날 솥단지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
모순이었고, 동시에 생존이었다.

 

이제는 그 모순이 더 이상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개는 식탁 위가 아닌, 소파 위에서 배를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다.
산책용 유모차에 타고, 아기처럼 안겨 다니며,
어떤 집에서는 생일 파티도, 보험 가입도 한다.
이름뿐 아니라 지위가 바뀌었다.

 

나도 변했다.
그저 먹는 사람 중 하나였던 내가
개를 키우고,
그 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며칠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낯선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흑염소탕 전문’
투박한 글씨와 함께, 푸른 산과 풀밭에서 뛰노는 흑염소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문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보신보다 위로, 고기보다 공감."

 

국물은 맑고, 고기는 은근한 힘이 있었다.
주인장은 조용히 말했다.
“개고기 끊고 나서 이걸로 보신하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뭔가… 먹으면서 설명 안 해도 되니까 마음이 편하대요.”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남았다.
맛보다 먼저 다가온 건, **‘덜 복잡한 마음’**이었다.

 

흑염소는 예부터 약재처럼 길러졌지만,
요즘은 새로운 감정의 출구가 되었다.
맛도 효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속엔 시대의 배려와 망설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지 사람들의 감정에 의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2024년, 국회는 마침내 한 시대의 막을 내릴 법을 통과시켰다.
3년 뒤, 2027년이면 식탁 위의 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먹지 않기로 한 것이기도 하지만,
먹을 수 없게 된 사회의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감히 먹지 않겠느냐’로 자신을 설명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흑염소탕 한 그릇 앞에서, 나는 그런 시대를 삼킨다.
과거의 모순과 현재의 윤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겨우 균형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삼킨다.

 

전통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늘 바뀌어야 살아남는다.
흑염소는 지금 그 자리를 조용히 메우고 있다.
모든 걸 잊게 하는 음식이 아니라,
우리가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는 음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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