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건 하늘을 닮았다.
매일 마주하지만, 똑같은 날은 없다.
어떤 날은 햇살처럼 따뜻하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흐리다.
그렇다고 하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아내와 다퉜다.
사소한 이유였다.
퇴근길에 사 오기로 한 반찬을 깜빡한 것.
"왜 이런 것도 못 챙기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버럭했다.
서로 말이 오가다, 결국 등을 돌렸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침묵은 집 안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한참이 지나도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날 밤, 빗소리가 창문을 때렸다.
소파에 기대 앉아, 멍하니 창밖을 봤다.
‘이게 정말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머릿속에서 되뇌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아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짧게 말했다.
“먹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말 없이, 우리는 라면을 나눠 먹었다.
숟가락 사이로 오가는
따뜻한 국물과 조용한 숨소리.
그게 화해였다.
그날 나는 알게 됐다.
싸움이 없는 관계가 좋은 게 아니라,
싸움 후에도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하늘이 흐릴 때,
그 안에 빛이 숨어 있다는 걸 우리는 자주 잊는다.
하지만 결국 구름은 걷히고
햇살은 다시 찾아온다.
부부도 그렇다.
실망도, 서운함도
아직 기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다.
그 감정 뒤에 용서가 따라온다면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하다.
하늘이 늘 맑기만 했다면
햇살이 이토록 반가울 리 없다.
우리도 그렇다.
오늘의 하늘이 흐려도
그 안엔 여전히,
맑아질 준비를 하는 푸른 마음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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