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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157

"상상으로 끓인 인생의 국물, 태평양 매운탕"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왠지 모르게 뜨거운 국물이 생각날 때가 있다. 매콤한 매운탕 한 그릇.혀끝을 톡 쏘는 얼큰함,땀이 흐르는데도 숟가락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 태평양을 통째로 끓여 매운탕을 만든다면?” 상상은 시원하게 뻗은 바다만큼 넓게 퍼진다.고추장을 양동이째 풀면바닷물은 순식간에 붉은 국물로 변한다. 소금은 필요 없다.원래 바다엔 짠맛이 가득하니까. 야채가 없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미역, 다시마, 톳 같은 해초들이바다 곳곳에 몸을 흔들고 있다.그 자체로 국물 맛은 이미 충분하다. 고기? 넘친다.멸치, 광어, 상어, 심지어 고래까지.살아 숨 쉬던 생명들이그대로 매운탕의 주재료가 된다. 태평양 바닥에서 타오르는 마그마가이 거대한 국물솥을 지핀다. 바다는 끓고,국.. 2025. 7. 6.
사랑의 매라는 이름의 체벌, 그 불편한 진실 – 한 시대, 한 교육자의 회고록 1960년대 중반, 나는 여덟 살의 꼬마였다.머리엔 부스럼이 앉았고, 오른쪽 가슴엔 어머니가 꿰매주신 손수건이 달려 있었다. 흐르는 콧물을 닦으라고 달아주신 것이었지만,그 천 조각엔 어머니의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세상에서 가장 작고도 큰 사랑이었다. 학교 칠판 위엔 늘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그러나 현실 속 인내는 쓰기만 했다.그 끝엔 회초리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구단을 틀리면 머리를 맞았고,애국가 가사를 헷갈려도 등짝을 맞았다.출석부는 너덜너덜했고,이유는 간단했다.학생들의 정수리를 내려치느라 닳아버렸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체벌은 더 조직적이었다.‘지도부’라는 완장을 찬 선배들이 있었고,복도 끝마다 울먹이는 숨소.. 2025. 7. 5.
핸들을 놓고 문장을 잡았다 – 자율주행의 시대 밤 11시, 강남대로.앞차와의 간격은 고작 5cm.뒤차의 헤드라이트는 내 등을 조용히,그러나 분명하게 밀어붙인다. 나는 운전대를 꼭 쥐고 있다.땀이 나는 건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긴장 때문이다.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언젠가는 이 운전대를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상상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상암동엔 자율주행 셔틀이 다니고,세종시엔 운전석 없는 차량이 달린다. 현대차, 기아, 테슬라...자율주행 기능은 이미 일상이다. 자율주행엔 ‘레벨’이 있다.레벨 2는 운전 보조,레벨 3은 조건부 자율주행.차가 스스로 달리고, 운전자는 준비만 하면 된다. 레벨 4는 운전자의 개입 없이거의 모든 상황에서 차가 스스로 운전한다.운전대 없는 차도 곧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진짜로‘운전하지 .. 2025. 7. 4.
가시밭길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등산을 자주 하게 된다.좋아서라기보단 그 길이 나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호흡은 거칠고, 다리는 무겁다.돌부리 하나에도 중심을 잃는다.가끔은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그 모든 순간이 낯설지 않다.교사로 사는 일과 꼭 닮았다.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민우.눈을 피하며 말했다.“선생님, 어제는 좀... 너무했어요.” 무슨 말이었을까?기억을 더듬다 떠올랐다."너는 왜 항상 그래?" 지적하려던 말이비수처럼 꽂혔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생채기를 내는 가시밭길이 부드럽게 느껴질까?" 나는 여전히 배운다.말의 무게, 침묵의 의미,눈빛 하나의 온도까지. 혼자 남은 교실.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바닥엔 흘린 연필이 구른다. 그 고요 속에서옆 반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이거 제가 만든 건.. 2025. 7. 3.
“일주일의 크루즈, 완전한 쉼이 준 낯선 충격” “노인들의 천국이야, 미국은.”여동생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2024년 늦봄, 나는 그 천국의 문을 잠시 열어보게 되었다.7일 일정으로 LA에서 출발해 멕시코를 오가는 크루즈 여행.생애 첫 배 위의 휴가였다. 처음 이민 간 여동생의 집에 머물며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해변의 산책로, 미술관, 유기농 마트—어디를 가도 백발의 사람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한국이라면 은퇴는 곧 '손주의 육아와 병원의 대기표'를 의미하지만,여긴 달랐다.자식은 고등학교까지만 키우고, 그다음 인생은 ‘부모 각자 몫’이라는 그들만의 규칙.자립한 아이들은 자기 삶을 살고,부모는 노년에 접어들며 진짜 인생을 시작한다고 했다. "한 번 해보는 거야, 오빠도."여동생의 추천으로 크루즈에 오르던 날,나는 기대보다는 막연함을 안.. 2025. 7. 2.
1960년대생 교사가 본 AI 시대 – 죽음보다 삶이 궁금한 오늘 내가 태어난 1960년대 초반,그 당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50세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나는 이미 생의 끝을 지나온 셈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그것도 꽤 건강하게. 그래서일까,아침마다 눈을 뜰 때면‘아직도 살아 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하루하루가 덤 같고,고맙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1991년, 나는 사회 교사가 되었다. 갓 임용된 새내기 교사로 교단에 섰을 때,칠판은 초록색 페인트로 정돈돼 있었고난방은 연탄이 아닌 온수 보일러였다. 어릴 적 호롱불 아래서 책을 읽던 세대였지만,교사로 나선 순간부터는형광등 아래 전기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 들어섰다. 기술은 이미 조용히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만큼은시대를 타.. 2025.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