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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씨가 된다 –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누가 들으면 낙관적인 말버릇쯤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그 말을 꺼내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교실 문을 열기 전, 나는 매일같이 속으로 중얼거린다.그 말이 내 하루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아이들의 온도로 움직인다.어떤 날은 그 온기가 따뜻하게 다가오고,또 어떤 날은 지독히도 삐딱한 감정이 교실을 가득 채운다. 아이들은 말보다 표정으로 이야기한다.그리고 나는 그 미묘한 틈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책상 위 교과서보다 더 어렵고,시험지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한 것이바로 교실의 공기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부터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그건 아이들을 향한 주문이자,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기도 같은 말.. 2025. 8. 3.
「내 꿈은 아직 칠판에 쓰여 있어요」 나는 오래된 칠판이다.인천의 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 맨 앞, 창가 쪽 벽에 기대어 있다.2001년 봄, 처음 설치되었을 때만 해도 내 몸은 새까맣고 반짝였다.하지만 지금은 분필가루에 물든 옅은 초록빛.모서리에는 누군가 자석으로 긁은 흠집이 남아 있다. 아침마다 문이 열리면,학생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교실로 들어온다.누군가는 휴대폰을 몰래 보며 자리로 가고,누군가는 “야, 오늘 수행이야?”라며 다급하게 속삭인다.나는 늘 그 자리에 서서, 그 하루를 조용히 담아낸다. 하지만 나는 단순한 칠판이 아니다.나는 기억의 벽이다.수학 공식을 적던 분필,국어 수업에서 읊던 시 한 구절,때로는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고백이 적히는 공간.지워진 것 같지만, 손끝의 흔적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는다. 몇 해 전 겨울, 이런 일.. 2025. 8. 2.
“예민한 난초와 나, 산천보세란이 가르쳐준 것” 꽃이 배달되었다.택배 상자 안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난초 하나.친구가 등단을 축하하며 보내온 선물이었다. 별 기대 없이 박스를 열었지만,그 순간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보랏빛 꽃망울이 맺혀 있는 낯선 난.이름은 ‘산천보세란’이라고 했다. 잎은 넓고 두툼했고,줄기에는 아직 피지 않은 꽃송이들이 조심스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사람 같았다.아직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감정,표현되지 않은 마음이 꼭 저럴까. 그 화분 앞에서 괜히 마음이 잔잔해졌다.마치 오래된 침묵과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나자,꽃은 피지도 못하고 시들기 시작했다. 줄기 끝의 망울들이 고개를 떨구었고,향기도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허둥지둥 물을 주고 위치를 바꿔보았지만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너무 늦은 것 같았다.나.. 2025. 8. 1.
“시기심, 왜 나만 뒤처진 것 같을까” 그 애가 웃고 있었다.어릴 적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다. 운동회 때 넘어져서,흙 묻은 무릎을 감싸고 흐느끼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때 내가 손수건을 내밀었던 기억도 함께. 그랬던 애가,이젠 TV 속에서 반듯한 넥타이를 매고,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대기업에서 젊은 나이에 본부장이 됐다며뉴스 자막 아래로 스펙이 줄줄이 흘렀다. 화면 속 그는 참 반듯하고, 당당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나는 화면을 끄고 나서야비로소 숨을 쉬었다. 그 애가 웃는다고,나는 왜 조용히 식었을까. 싫은 것도 아니고, 미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가슴 안쪽이 묘하게 서늘했다. 시기심.그 감정의 이름을 꺼내는 데까지는꽤 시간이 걸렸다. 시기심은 꼭누군가를 끌어내리려는 마음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는,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가늠하려는 눈.. 2025. 7. 31.
총 대신 손을 내민 한국, 베트남의 꿈이 되다 하노이의 강은 조용히 흐른다.세월이 켜켜이 쌓인 물결 위로, 어느새 낯익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김우중, 박항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조용히 건너온 수많은 한국의 발자국들. 하지만 그 강의 바닥 깊은 곳엔,쉽게 건드릴 수 없는 오래된 상처 하나가 가라앉아 있다. 월남전. 1964년, 한국은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남짓. 희망조차 사치 같던 시절,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피로 외화를 번다." 젊은이들은 총을 메고 전쟁터로 향했다.전투병, 기술자, 의료인력. 그들은 먼 타국에서 피를 흘렸고,땀을 흘렸고, 때로는 침묵만 안고 돌아왔다. 그 전쟁은 한국에게도, 베트남에게도 잊기 힘든 상흔을 남겼다. 한쪽은 절박함의 이름으로,다른 한쪽은 침입과 상실의 기억으로. 하지만.. 2025. 7. 30.
“김치, BTS, 오징어게임… 미국에서 느낀 K문화의 위력” 처음 미국 땅을 밟던 그날,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서 나는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낯선 공기, 낯선 언어, 낯선 시선. 그 긴 줄 끝에서 마주한 심사관은 건장한 흑인 남성이었다.문신이 어깨를 덮고 있었고, 눈빛은 매서웠다.영어는 짧고, 심장은 빨랐다. ‘혹시 무슨 오해라도 받으면 어쩌지’불안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었다. “여행 오셨어요? 몇 일 계세요?” 또렷한 한국어.순간, 공항의 소음이 사라지고그 한 문장만이 공중에 떠 있는 듯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네... 네!” 하고 겨우 대답했다. 그는 말했다.“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었어요.떡볶이 진짜 좋아해요. 근데 매워요. 진짜.”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의 말투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단순한 외국어가 아니라,문.. 2025.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