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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배우는 인간, 바둑판 위의 공존 어릴 적,아버지와 나는 말수가 적은 사이였다.하지만 주말이면 바둑판 앞에 마주 앉았다.침묵 속에 돌을 놓고,돌이 모이면 어느새 대화가 시작됐다.말 대신 호흡으로, 손끝으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지금은 그 바둑판만이 남아 있다.아버지는 진즉에 세상을 떠나셨고,나는 가끔 그 바둑판을 꺼내놓는다.낡고 반들거리는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그의 손길을, 그의 숨결을 떠올린다. 2016년 봄,세상이 다시 바둑을 주목하던 날이 있었다.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 그날 나는 혼자 TV 앞에 앉았다.아버지가 옆에 있었다면“그래도 사람이 이기겠지.바둑은 사람이 두는 거잖아.”하고 웃었을까. 하지만 결과는그 기대를 조용히 무너뜨렸다.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다.단 하나의 판을 제외하고. 그리고 그는 말했다.“이제 바둑은.. 2025. 7. 19.
“공중화장실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화장실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이 단순한 말은 나이 들어 갈수록 자주 떠오른다.그곳은 인간이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이자, 가장 배려받고 싶은 순간이 머무는 공간이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는삐걱이는 나무 문이 달린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시멘트 발 디딤판,그 밑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과 냄새가 아득하게 퍼져 있었다. 아이들 사이엔 ‘똥통에 빠진 놈’이라는 말이 있었다.실제로 누군가 빠졌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그 말 하나로 한 학기 내내 놀림을 받았고,그 웃음 뒤에는 누구나 빠질 수도 있다는 은근한 공포와 공감이 숨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매번 화장실을 갈 때면호흡을 멈추고, 발끝에 힘을 주고, 어두운 구멍을 피하듯 바라보며단 1초라도 빨리 그 공간에서 .. 2025. 7. 18.
"7월, 볏잎 사이를 걷는 뜸부기와 내 유년의 여름" 칠월의 시골은세상이 숨을 멈춘 듯 고요하다. 햇살은 논물 위에 금빛 얼룩을 남기고바람은 들풀의 숨결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 하나.“뜸… 뜸…” 울음이라기보단마음속에서 오래 삭힌 말 한 줄이조심스레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 그 순간,나는 시간의 틈에 발을 디뎠다.어릴 적,내 고향의 여름엔 뜸부기가 있었다. 정확히는,**‘뜸부기의 소리’**가 있었다. 그 울음은 언제나 멀었다.가까이 온 듯하다가도풀숲 너머로 스르르 사라졌고찾으러 가면 들리지 않았다. 뜸부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확실히 ‘존재’했다. 그 존재감은소리보다 더 큰 침묵으로기억 속에 각인되었다.아버지는한 번도 그 새를 잡으려 들지 않았다. “저건 그냥,있어야 할 거니까.” 그 말의 뜻을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 2025. 7. 17.
“소나무와 난초, 대나무가 알려준 마음의 진실” 사람의 마음은보이기보다, 들리기보다,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그 느낌을 놓친다.조용한 한숨,말끝의 망설임,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떨림. 그 모든 신호가한 사람의 하루가 얼마나 버거웠는지를조용히 말해주고 있을지 모른다. 소나무를 본다.언제나 푸르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나무.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그 자리를 지킨다. 사람들은 말한다.“강하다”,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시간 속에서 조금씩 상처를 지우듯,오래된 잎을 떨구고조용히 새 생명을 준비한다. 푸름은 어쩌면상처를 드러낼 수 없는 슬픔의 색.묵묵히 버텨낸 생명력은언제나 조용하다. 난초는 고상한 꽃이라 불린다.사람들은 예쁘다고 말한다.하지만 그 말이 끝날 즈음,난초는 햇빛도 닿지 않는 곳에서혼자 조용히 피.. 2025. 7. 16.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망한 이야기” 어릴 적 나는 꽤 순진한 야망을 품고 살았다.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연예인이 되어 세상을 휘어잡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나는 그냥,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말 한마디 잘못해서 눈총 받는 것도 싫고, 뭔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눈만 껌뻑이는 것도 싫었다.그래서 나는 감정 레이더를 켜고 사람들의 눈빛, 톤, 발끝의 방향까지 읽었다."쟤 기분 좀 안 좋은가?" 싶으면 초코파이 하나 내밀고,"괜찮아?"라는 말은 하루 평균 다섯 번은 했다.혼자서 인간 관계부장이라도 된 듯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회의 중, 누가 툭 던지듯 말했다.“적당히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다 맞춰주면 바보 돼요~”나는 그 말에 진심으로 반응했다.“공감 .. 2025. 7. 15.
“숨겨진 마음을 꺼내는 법 – 매미가 알려준 이야기” 매미 한 마리가 창틀에 붙어 있었다.햇살은 강했고, 바람은 느릿했다.그 매미는 울지 않았다.하지만 내겐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들렸다.아직 허물 속에 머무는 그것을 보며, 나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나는 매미의 울음을 오래 싫어했다.그 소리는 왠지 너무 뾰족했고,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매서웠다.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그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어쩌면 내 안에도 한참을 땅속에서 꿈틀대던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미는 기다림의 생명이다.수년을 어두운 땅속에서 보내고, 마침내 한여름 땅을 뚫는다.그 순간 매미는 허물을 벗는다.고요한 사각거림, 눈으로 들리는 듯한 떨림.나는 매미가 울기 전에 먼저 허물을 벗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누구나 울기 전에 허물을 벗어야 한다.상처받은.. 2025.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