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의 알을 깨며 사는가
점심으로 찐 달걀을 먹다껍질을 까던 손이 잠시 멈췄다.그걸 낳은 닭이 문득 떠올랐다. 기계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알을 낳는 삶.닭은 그것을 스스로의 운명이라 믿었을까,아니면, 인간이 그렇게 믿게 만든 걸까. 껍질을 벗기자새하얀 흰자 속에 노란 노른자가해처럼 나를 바라본다.병아리였을 수도 있고,그저 내 점심이었을 수도 있다. 닭은 정말 이 알을 나에게 주었을까.아니면, 나는 빼앗은 걸까.나는 여전히, 조용히 씹으며 생각 중이다. 우리는 알을 삶고,지단을 부치고,때로는 화가 나면 그것을 던지기도 한다.영양이 어쩌고, 피부가 어쩌고 말하면서정작, “고맙다”는 말은잊은 지 오래다. 한 번은고등학생 시절,친구와 싸우다 달걀을 던진 적이 있다.그때 깨진 건 달걀이 아니라,서툰 내 마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우주도..
2025. 5. 8.
「자물쇠는 이미 열려 있었다-맹꽁이 소리」
나는 오랫동안 닫혀 있다고 믿었다.문이든, 가능성이든, 세상이든.애초에 문고리조차 안 잡아보고선,“아, 저건 잠겼겠지.”그렇게 혼자 판단하고 혼자 낙담했다. 그날도 그랬다.습기 머금은 오후, 아무 일도 하기 싫은 날.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문이 눈에 들어왔다.오래된 창고 문.닳아버린 자물쇠가 다소곳이 열려 있었다.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지만 말이다. “어라?”그 순간, 어딘가에서 맹꽁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맹꽁 맹꽁?아니다.그들은 다소 민망하게,‘맹맹’ 하며 운다. 그 울음소리, 왠지 낯이 익었다.삐걱거리는 의자, 애매한 변명,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내 안에서 자주 울리던 그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맹맹했다.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할 수 없는 일에 겁을 먹고,“괜찮아”라며 제풀에 주저앉던 순간들.다 그놈의 맹..
2025. 5. 8.
화초를 키우는 할머니
살다 보니 알겠더군요.말이 꼭 있어야 마음이 전해지는 건 아니란 걸요. 수줍은 웃음 하나,따뜻한 눈빛 하나면 충분할 때가 있어요. 이젠 제 곁엔 조용함만 남았어요.자식들은 바쁘게 살고,영감도 먼저 떠났죠. 아무도 없는 집에서하루가 그냥 스쳐 가고,말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웃이 죽어가던 화초 하나를 주고 갔어요.“당신 손길이라면 혹시…”화초는 잎도 없고,흙도 바싹 말라 있었죠.꼭 제 모습 같았어요.그래도 물을 한 모금 줬어요. 며칠 뒤,가지 끝이 초록빛으로 살아났죠.노란 꽃 하나가 피어났을 땐그 꽃이 말하는 것 같았어요.“할머니, 나 살아 있어요.” 그날 이후,베란다에 화분이 늘기 시작했어요. 잎이 뾰족한 아이,줄기가 춤추는 아이,꽃을 꼭꼭 숨겼다 피우는 아이들.그 애들이 절 기다..
2025. 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