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 안의 그림자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나에게 통장을 하나 건넸다.“네 이름으로 된 거야. 이제부터는 네가 벌어야 해.”말은 담담했지만, 그 말의 무게는 오랜 시간 내 마음을 눌렀다.통장 속엔 몇 십만 원의 잔고와 함께, 내가 앞으로 책임져야 할 '삶'이 들어 있었다.그날 이후, 돈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세상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실처럼 느껴졌다.때로는 얇고 투명했으며, 때로는 목을 조일 만큼 질겼다. 돈은 나를 성장시켰다.아르바이트로 처음 받은 월급은 교과서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그 안에는 손님의 불평, 사장의 눈치, 그리고 내 몸의 피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통장 잔고가 늘어날수록 마음은 가벼워지기보단 무거워졌다.마치 발밑에 쌓이는 모래주머니처럼.돈은 내 자유를 담보로 ..
2025. 5. 13.
나는 정말 나의 것일까
TV 리모컨을 들었다가문득, 멈췄다. 아무 소리도 없는 방 안.창밖으로는 택배 트럭 소리,누군가 퉁명스레 닫는 현관문 소리.그 소음들이 파도처럼 멀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셔츠, 내가 만든 걸까?책상도, 냉장고도, 텔레비전도모두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것. 내 몸은 어떨까.피부와 뼈, 눈동자까지모두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 머릿속 지식들도책에서 온 말, 누군가의 생각.곱씹을수록 빌려온 것들뿐이다. 그럼 진짜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뭘까? 아마도,혼자일 때 떠오르는 생각들.누구에게 배운 적 없는 문장들.그것들이 내 안에서 자라는 걸까? 하지만,그 생각조차 욕망과 두려움에 흔들린다.육체는 날 배신하고,나는 나를 낯설게 본다. 부끄러웠다.무엇 하나 온전히 나의 것이라..
2025.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