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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약한 자의 표정

by 선비천사 2025. 5. 7.

 

 

처음으로 맞았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건 분노의 손길도 아니고, 분명한 훈육도 아니었다.
그저,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세상의 질서 같은 것이었다.

 

소리는 뺨보다 먼저 왔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스치고, 이내 따뜻하고 무거운 감각이 얼굴에 닿았다.
놀랄 틈도 없이 표정이 무너졌다.

 

“인상 쓰지 마.”

 

말이 날아왔다.
나는 무너진 얼굴 위에, 급히 웃음을 얹었다.
서툰 웃음은 도리어 모욕처럼 느껴졌는지, 또다시 손이 날아왔다.
웃는 것도, 아닌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눈물이 흘렀다.
억울해서도,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그저, 몸이 흘려버린 감정의 잔여물이었다.

 

“울어? 누가 울랬어?”

 

이제 나는 무표정이 되기로 했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사라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의 손끝이 내 귓불을 잡았다.
익숙하게도, 기이하게도, 부드러운 톤으로 말했다.

 

“인생은 즐거워야 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뺨보다 오래, 피부보다 깊이, 그 말은 내 안에 박혔다.
그날 이후, 나는 웃을 때도, 울 때도
이 감정이 정말 내 것인지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약한 자의 표정은 감정이 아니라 생존이다.
때로는 웃음처럼 보이고, 때로는 무표정처럼 보이지만
그 속엔 누구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선택이 숨어 있다.

 

진짜 아픈 건 뺨이 아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살 수 있는지를 계산하게 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누군가의 손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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