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의 시골은
세상이 숨을 멈춘 듯 고요하다.
햇살은 논물 위에 금빛 얼룩을 남기고
바람은 들풀의 숨결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뜨리는 소리 하나.
“뜸… 뜸…”
울음이라기보단
마음속에서 오래 삭힌 말 한 줄이
조심스레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
그 순간,
나는 시간의 틈에 발을 디뎠다.
어릴 적,
내 고향의 여름엔 뜸부기가 있었다.
정확히는,
**‘뜸부기의 소리’**가 있었다.
그 울음은 언제나 멀었다.
가까이 온 듯하다가도
풀숲 너머로 스르르 사라졌고
찾으러 가면 들리지 않았다.
뜸부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확실히 ‘존재’했다.
그 존재감은
소리보다 더 큰 침묵으로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아버지는
한 번도 그 새를 잡으려 들지 않았다.
“저건 그냥,
있어야 할 거니까.”
그 말의 뜻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그 새는 볏잎 사이에 둥지를 짓고
물결에 흔들리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걸음은 조심스러웠고
날개는 좀처럼 펴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그 알을 본 적 없고,
새끼가 뛰는 걸 본 적도 없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했다.
그러던 어느 해,
나는 고향을 떠났다.
도시는 시끄럽고 빠르며,
너무나도 똑똑하게 움직였다.
버스는 정시에 오고
신호는 순서대로 바뀌고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바쁘게 살아갔다.
그곳에는
‘뜸’ 들일 시간이 없었다.
수년 후,
뉴스에서 뜸부기가
멸종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통계도,
학술 용어도 필요 없는 문장이었다.
"너의 여름이 사라지고 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버지가 했던 말의 의미를.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지는 건,
풍경 하나가 아니라
세계 하나가 무너지는 일이라는 걸.
얼마 전,
아들과 함께 고향을 찾았다.
논은 여전히 초록이었다.
그러나 그 초록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물었다.
“뜸부기 소리 들어봤니?”
아들은 휴대폰을 보며 대답했다.
“그게 뭐야? 유튜브에 있어?”
잠시 웃었다.
그리고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에게 들려줘야 할 것은
소리가 아니라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것을.
‘뜸’이라는 시간.
말과 말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
그것이 바로
뜸부기가 남긴 유산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울음을 기다린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들릴지도 모른다.
볏잎이 흔들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뜸… 뜸…” 그 소리.
그날,
나는 아이에게 조용히 말할 것이다.
“저건 그냥,
있어야 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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