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한 마리가 창틀에 붙어 있었다.
햇살은 강했고, 바람은 느릿했다.
그 매미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내겐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들렸다.
아직 허물 속에 머무는 그것을 보며, 나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나는 매미의 울음을 오래 싫어했다.
그 소리는 왠지 너무 뾰족했고,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매서웠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그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 안에도 한참을 땅속에서 꿈틀대던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미는 기다림의 생명이다.
수년을 어두운 땅속에서 보내고, 마침내 한여름 땅을 뚫는다.
그 순간 매미는 허물을 벗는다.
고요한 사각거림, 눈으로 들리는 듯한 떨림.
나는 매미가 울기 전에 먼저 허물을 벗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누구나 울기 전에 허물을 벗어야 한다.
상처받은 과거, 감추고 싶은 진심, 말하지 못한 마음.
그 모든 껍질을 스스로 떼어낼 수 있어야 비로소 목소리가 나온다.
어머니는 십 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생전의 어머니는 종종 말씀하셨다.
“넌 어릴 때부터, 말하고 싶은 걸 다 삼켰어.”
그 말이,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내 허물 속을 찌른다.
그래서 그날 밤, 모처럼 일기를 썼다.
속으로만 울던 시절을 꺼내어 글로 옮겼다.
그 순간, 나는 울고 있었다.
목소리 없이 울며, 허물을 벗고 있었다.
매미의 울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다.
그건 살아 있다는 신호이며,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몸짓이다.
나는 이제 그 울음을 다르게 듣는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가장 솔직한 목소리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낸다는 뜻으로.
이제는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숨기지 않기 위해서.
내 안의 땅속 시간들을 마주하고,
그 시간들을 허물처럼 밀어내고,
그 위에서 나만의 여름을 시작하고 싶다.
매미는 오늘도 울고 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서툴지만,
적어도 울 수 있는 마음은 갖게 되었다.
어쩌면 모든 울음은 말보다 정직하다.
그러니 나는 이 여름,
조용히 내 안에서 허물을 벗고 있다.
*관련글 보기
(거울이 말을 걸었다) https://sunbicheonsa.tistory.com/114
“잘 살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거울이 말을 걸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리하다가손이 멈췄다. 눈가에 붉게 부은 자국이 보였다.잠을 설친 탓이었다. 그제야 어젯밤 회식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넌 너무 감정을 숨겨. 그래서 좀 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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