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왜 돌의 섬이 되었을까? 180만 년 화산활동과 현무암

도토리묵을 쑬 때면 늘 신기하다. 물과 도토리가루를 섞어 불 위에 올려놓으면 한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냄비 바닥에서 작은 기포가 생겨난다. 기포는 점점 커지고, 퐁퐁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올라와 터진다. 잠잠하던 냄비 속은 순식간에 요동친다. 나는 제주도를 생각할 때마다 그 도토리묵 냄비를 떠올린다.

제주도는 한 번의 분출로 생겨난 섬이 아니다. 제주 세계지질공원의 화산 지형을 다룬 2024년 학술논문은 약 180만 년 전부터 약 1천 년 전까지 이어진 화산활동으로 설명한다. 지구 깊은 곳의 마그마가 솟아오르고, 용암과 화산 분출물이 쌓이는 긴 과정 속에서 섬과 한라산, 여러 오름이 형성되었다. 제주 세계지질공원 화산 지형 연구(Episodes, 2024). 도토리묵이 끓으며 기포를 터뜨리듯, 제주도 역시 지구 내부의 뜨거운 힘이 수없이 솟아오르며 만들어진 섬이다.

그래서 제주도를 이해하려면 바다보다 먼저 돌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제주도를 푸른 바다와 감귤의 섬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제주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존재는 돌이다.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식어 굳은 현무암은 해안에도 있고, 오름에도 있고, 밭에도 있다. 제주 사람들은 오랫동안 돌과 함께 살아왔다. 밭을 갈면 돌이 나왔고, 집을 지으려 해도 돌을 치워야 했다. 그렇게 모인 돌은 밭담이 되었고, 길이 되었으며,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감귤보다 먼저 있었던 것도 돌이었고, 숲보다 먼저 있었던 것도 돌이었다. 제주는 돌 위에 세워진 섬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제주 돌문화공원을 찾았다. 사실 그곳은 화려한 관광지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카페, 오름을 먼저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돌문화공원을 걷다 보니 오히려 그곳에 제주도의 시작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에 놓인 현무암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돌은 사람의 얼굴 같았고, 어떤 돌은 동물의 형상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표면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셀 수 없이 뚫려 있었다. 처음에는 흠집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결함이 아니었다. 용암이 식어 가는 과정에서 가스가 빠져나가며 남긴 흔적이었다. 현무암의 구멍은 이 돌이 지나온 뜨거운 시간의 기록이었다.

그 순간 사람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상처를 감추려 한다. 흠이 없는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현무암은 수많은 구멍 때문에 오히려 현무암다워진다. 만약 그 흔적들이 없었다면 제주의 돌은 지금처럼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살아오며 생긴 상처와 흔적이 결국은 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돌에 대한 생각은 곶자왈에서 더욱 깊어졌다. 울퉁불퉁한 현무암 위로 이끼가 자라고, 넝쿨식물이 돌과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숲을 걷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다 보니 놀라운 사실이 떠올랐다. 지금 눈앞의 숲을 가능하게 한 것도 결국 돌이었다는 사실이다. 처음 제주도에는 뜨거운 용암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무암은 오랜 세월 동안 비를 맞고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부서졌다. 돌은 흙이 되었고, 그 흙에서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랐다. 결국 제주도의 생명은 돌에서 시작된 셈이다.

제주의 돌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밭에서 나온 현무암은 제주 밭담이 되었다. 그런데 제주 밭담은 바람을 완전히 막지 않는다. 돌 사이에 남겨진 틈으로 바람이 지나간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담이라면 바람을 막아야 할 것 같은데 왜 굳이 틈을 남겨 두었을까.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든 바람을 막으려 하면 오히려 담이 무너진다. 조금은 흘려보내야 오래 버틸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돌을 쌓으며 자연과 싸우는 법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제주 해변을 걷다가 밤톨만 한 현무암 하나를 주운 적이 있었다. 특별히 아름다운 돌도 아니었고 값비싼 돌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지고 가고 싶었다. 나는 그 돌을 가방 속에 넣고 혹시 누가 볼까 괜히 주변을 살폈다.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는 단순한 여행 기념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가져가고 싶었던 것은 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돌 속에 담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180만 년 전 바닷속에서 시작된 화산활동, 수없이 반복된 용암의 분출, 한라산의 성장, 현무암이 흙이 되고 숲이 되기까지의 시간. 손바닥에도 다 들어오지 않는 작은 돌 하나에는 인간의 생애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이 담겨 있었다.

도토리묵 냄비에서 터지는 기포는 잠시 후면 사라진다. 그러나 제주도의 용암은 수백만 년에 걸쳐 식으며 섬이 되었다. 그 뜨거운 용암은 현무암이 되었고, 현무암은 흙이 되었으며, 흙은 숲이 되고 마을이 되었다. 제주도의 바다도, 숲도, 사람들의 삶도 결국은 그 돌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이제 제주도를 떠올리면 푸른 바다보다 먼저 검은 현무암이 생각난다. 오래전 가방 속에 넣어 왔던 그 밤톨만 한 돌도 함께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제주에서 돌 하나를 가져온 것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 식지 않았던 제주도의 시간을 잠시 손에 올려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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