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의 하얀 공룡알, 볏짚과 곤포 사일리지의 두 번째 생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이상하리만큼 큰 것들이 남는다.

하얀 비닐을 두른 둥근 덩어리들이다. 멀리서 보면 누군가 빈 논에 거대한 알을 낳아 놓은 것 같다.

사람들은 그것을 ‘공룡알’이라고 부른다.

정식 이름은 곤포 사일리지다. 수확 뒤 남은 볏짚 등을 압축해 둥글게 말고 비닐로 밀봉한 것이다. 가축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사료로 활용한다.

해 질 무렵, 논둑을 걷다가 공룡알 하나 앞에 멈춰 섰다.

손바닥을 대보았다.

차가웠다.

그 차가운 비닐 안에 볏짚이 들어 있었다.

한 계절 동안 벼를 떠받치고, 낟알을 익히고, 가을 햇볕 아래 몸을 말렸던 줄기들이다.

쌀은 이미 사람에게로 갔다.

그런데 볏짚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전 농촌에서도 그랬다.

벼를 베어 들인 마당에는 곡식단을 쌓아 놓은 낟가리가 있었다. 탈곡을 마치고 낟알을 털어낸 뒤에는 볏짚이 남았다.

수확이 끝났다고 해서 볏짚까지 쓸모를 다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볏짚의 두 번째 생이 시작되었다.

볏짚은 이엉이 되어 지붕으로 올라갔다. 눈과 비를 막고 겨울바람을 견뎠다.

손으로 비벼 꼬면 새끼줄이 되었다. 자루의 입을 묶고, 울타리를 동여매고, 흩어지는 것들을 붙들었다.

짚신이 되면 사람의 발밑으로 내려왔다.

흙과 섞이면 담벼락의 일부가 되었다. 외양간에서는 가축의 먹이가 되거나 몸을 누일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아궁이로 들어가기도 했다.

볏짚에 불씨가 닿으면 불꽃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환하게 일어났다가 금세 사그라졌다.

짧은 불이었다.

그러나 그 불은 솥을 데웠고, 밥을 익혔고, 차가운 방바닥에 온기를 밀어 넣었다.

재가 된 뒤에도 끝은 아니었다.

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면 볏짚은 늘 그렇게 살았다.

위로 올라가 지붕이 되고, 아래로 내려가 신발이 되었다. 몸을 비틀어 줄이 되었고, 몸을 태워 불이 되었다.

하나의 쓰임이 끝나는 곳에서 다른 쓰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옛 농촌에서 볏짚은 벼농사의 부산물만은 아니었다.

쌀이 사람의 한 끼를 책임졌다면, 볏짚은 사람과 집과 가축의 겨울을 함께 건넜다.

마당 한쪽을 차지하던 낟가리와 볏짚 더미는 이제 좀처럼 보기 어렵다.

농촌의 가을도 달라졌다.

낫을 들고 논으로 들어가던 사람 대신 콤바인이 벼 사이를 지나간다. 베기와 탈곡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볏짚을 다루는 일에도 기계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많은 것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초가지붕도 사라졌다.

짚신도 사라졌다.

마당에 높이 쌓였던 낟가리도 보기 어려워졌다.

아궁이에 짚을 밀어 넣던 풍경도 멀어졌다.

그런데 가을 들판의 하얀 공룡알 앞에 서 있으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습을 바꾼 것은 아닐까.

오늘날의 곤포 사일리지는 옛 낟가리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낟가리는 누렇고 거칠었다. 곤포 사일리지는 희고 매끈하다.

낟가리는 사람의 손으로 곡식단을 쌓아 올렸다. 곤포 사일리지는 수확 뒤 남은 볏짚을 기계가 압축하고 비닐로 감싼다.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두 풍경 사이에는 한 가지 닮은 점이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도 들판과 농가는 겨울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볏짚이 있었다.

수확을 끝낸 벼가 자신에게 남은 것을 다시 다른 생명에게 건넨다는 사실도 달라지지 않았다.

곤포 사일리지 안에서 볏짚은 발효 과정을 거친다. 겨울이 오면 그것은 가축이 먹을 사료가 된다.

예전에는 지붕이 되어 사람의 겨울을 지켰다.

이제는 사료가 되어 가축의 겨울을 건넌다.

방법이 달라졌을 뿐, 볏짚은 여전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하얀 비닐을 한 번 더 쓸어보았다.

차갑고 매끈했다.

그 안에 있는 볏짚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 오래된 농촌과 지금의 농촌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옛것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쓰임을 바꾸고, 자리를 옮기고, 다른 이름을 얻는다.

볏짚이 그랬다.

초가지붕에서 가축의 사료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의 손으로 묶이던 볏짚은 이제 기계로 압축되어 곤포 사일리지가 된다.

모습은 달라졌지만 볏짚이 하는 일의 깊은 곳에는 오래된 질서 하나가 남아 있다.

수확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을은 모든 것이 끝나는 계절처럼 보인다.

벼는 베이고, 낟알은 떠나고, 들판은 비어 간다.

하지만 빈 들판을 오래 바라보면 끝난 것만 보이지 않는다.

떠난 것의 자리에서 무엇인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쌀은 사람의 몸으로 간다.

볏짚은 가축의 겨울로 간다.

가축이 남긴 것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이듬해 또 다른 벼를 밀어 올린다.

농촌의 순환은 거창한 말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한 생명이 자신의 다음 자리를 내어줄 뿐이다.

해가 기울었다.

논바닥의 빛이 빠르게 엷어졌다.

멀리 놓인 곤포 사일리지도 하나씩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하얀 공룡알에서 손을 거두었다.

손바닥에는 비닐의 차가운 감촉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차가운 것을 만졌는데 손바닥에는 오래도록 온기가 남는 것 같았다.

논둑을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둑해진 가을 들판에 하얀 공룡알 몇 개가 희미하게 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수확하고 남은 볏짚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겨울을 날 사료일 것이다.

그리고 내 눈에는 한 계절이 다음 계절에게 건네는 조용한 인사처럼 보였다.

들판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낟알을 모두 떠나보낸 볏짚은 그곳에서 다시 자신의 다음 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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