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 포구 난전

잔칫날 분위기는 역시 정식 식당보다 난전이 제격이다. 깔끔한 실내와 정갈한 상차림도 좋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회 한 점에는 식당이 흉내 낼 수 없는 맛이 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오이도를 찾는다. 특별한 날이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혼자 바다를 보며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을 때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곳이 오이도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오이도는 수도권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바다 가운데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등대와 조개구이 거리를 떠올리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은 포구 끝에 자리한 난전이다. 난전은 단순히 회를 파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에는 서해안 포구의 생활문화와 어촌의 정취, 그리고 시장의 활기가 살아 있다. 그래서 오이도를 여러 번 찾은 사람들 가운데는 화려한 식당보다 난전을 먼저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이도에 도착하면 먼저 제방길을 걷는다. 바다를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에는 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서해의 풍경은 올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제방 입구에 있는 술빵집에서는 갓 나온 술빵 냄새가 사람들을 붙잡는다. 따뜻한 술빵 한 봉지를 들고 걷다 보면 어느새 오이도의 상징인 빨간등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지만, 나는 등대를 지나 포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포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난전이 펼쳐진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형 수산시장처럼 거대한 수조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도 난전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함박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함박 안에는 그날 들어온 광어와 우럭, 숭어를 비롯해 꽃게와 낙지, 조개류 등 계절마다 다른 수산물이 담겨 있다. 얼음 위에 놓인 생선들은 갓 바다에서 올라온 싱싱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이도 난전의 재미는 그저 회를 먹는 데 있지 않다. 직접 함박을 들여다보며 오늘 가장 좋은 생선을 고르는 과정부터가 하나의 즐거움이다. 상인들은 손님에게 오늘 들어온 생선과 제철 수산물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오늘 우럭이 좋아요.” “숭어가 살이 많이 올랐네요.”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대형 마트에서는 물건만 사고 끝나지만 난전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 이것이 난전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이기도 하다.
생선을 고르면 상인은 그 자리에서 회를 떠 준다. 보통 두 사람이 먹을 정도의 양이면 3만 원 안팎이면 충분하다. 물론 계절과 어종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손질이 끝난 회를 들고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난전 가운데 마련된 임시 천막이다. 오이도 난전의 진짜 매력은 사실 이곳에서 시작된다.
비닐천막 아래에는 간이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다. 언뜻 보면 소박하고 투박한 공간이다. 그러나 자리에 앉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바닷바람이 천막을 흔들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회를 뜨는 칼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상인들의 목소리와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포구에 퍼지고, 머리 위로는 갈매기들이 날아다닌다. 고급 횟집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회보다 이런 분위기를 먹으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술과 상추, 쌈장 같은 간단한 먹거리는 근처 작은 슈퍼에서 살 수 있다. 집에서 직접 준비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누군가는 친구들과 함께, 또 누군가는 혼자 바다를 바라보며 회를 즐긴다. 특별한 규칙도 형식도 없다. 그래서 더욱 편안하다. 천막 안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말을 섞게 된다. “오늘 회 좋네요.”라는 한마디가 금세 정겨운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난전 왼편에는 갯벌체험장이 자리하고 있다. 썰물 때가 되면 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조개를 찾으며 뛰어다니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다. 갯벌 위를 걷는 사람들과 포구에서 회를 먹는 사람들이 한 장면 안에 어우러진다. 갈매기들은 갯벌과 포구를 오가며 서해안 특유의 풍경을 완성한다. 오이도 난전은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바다와 사람, 관광과 생활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사실 난전은 우리나라 항구와 포구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활시장의 한 모습이다. 어민들이 잡아 온 수산물을 직접 팔고 손님은 그 자리에서 구매해 먹는다. 대형 유통망과 프랜차이즈 식당이 늘어나면서 이런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오이도 난전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이곳에는 아직도 포구의 시간이 남아 있다. 가격표보다 대화가 먼저 오가고, 서비스보다 정이 먼저 건네진다. 상인들은 하루의 어획량을 이야기하고 손님들은 바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모습은 오래전 우리 포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최근 오이도는 수도권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성장했다. 조개구이집과 횟집, 칼국수 전문점, 전망 좋은 카페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시설은 편리해졌고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난전은 여전히 예전 포구의 정취를 가장 진하게 품고 있는 공간이다. 플라스틱 함박에 담긴 생선과 비닐천막 아래의 식탁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진솔한 풍경을 보여 준다.
회를 다 먹고 나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포구를 바라본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붉은 노을이 갯벌과 바다를 천천히 물들인다. 조금 전까지 난전에서 들리던 웃음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저녁 바람 속에 섞여 멀어져 간다. 그 순간이면 오늘 하루가 참 넉넉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이도에는 유명한 조개구이집도 많고 깔끔한 횟집도 많다. 그러나 난전은 전혀 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곳에는 화려함 대신 소박함이 있고, 편리함 대신 생생함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따뜻함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오이도를 찾을 때마다 결국 난전으로 향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들은 회를 먹기 위해 난전을 찾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다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점점 사라져 가는 포구의 풍경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오이도 포구 난전에는 플라스틱 함박 위로 싱싱한 생선이 놓이고, 비닐천막 아래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풍경은 말없이 이야기한다. 바다의 맛은 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정과 포구의 시간 속에도 함께 담겨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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