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삶에도 남는 것|갯벌에서 깨달은 시간의 의미

갯벌에 남은 시간

 

바다가 물러난 갯벌에는 수많은 구멍이 나 있었다. 작은 게가 드나든 자리와 조개가 숨을 쉰 흔적이었다. 물길을 따라 고인 바닷물이 늦은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진흙에서 짠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물이 빠진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한때 내게 삶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일이었다. 남들보다 앞서야 했고, 오래 품은 꿈을 반드시 이루어야 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마지막 결과를 확인하던 날, 화면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떠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달라질 리 없는 글자를 다시 확인하다가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책상에는 여러 해 동안 모은 자료가 쌓여 있었다. 가장자리가 닳은 책과 밑줄이 가득한 종이들이었다. 한때는 그것들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에는 펼쳐 볼 수도, 버릴 수도 없었다.

저녁 무렵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되었느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답장을 쓰다가 지웠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 같았고, 괜찮지 않다는 말은 구차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날보다 온 힘을 다하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날이 더 부끄러웠다.

사람들은 도전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실패는 아름다운 말로 덮이지 않았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고, 닫힌 기회가 다시 열리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사람들을 피했다. 아침이면 눈을 떴지만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다가도 문득 책상 위에 쌓인 종이들이 떠올랐다. 밥 한 숟가락을 삼키는 일조차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흉내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갯벌을 찾았다.

무엇을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방 안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실패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바다라면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 같았다.

썰물이 지난 갯벌은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 작은 게들이 진흙 위를 가로질렀고, 얕은 물길에서는 기포가 터졌다. 멀리서 새들이 울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뻘이 장화를 붙잡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 한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허리를 굽혀 조개를 캐고 있었다. 호미로 진흙을 걷어 내고, 손끝으로 조개를 찾아 바구니에 넣었다. 조개가 나오지 않으면 조금 옆으로 옮겨 다시 뻘을 팠다.

나는 갯벌 가장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몇 번이나 빈손으로 일어섰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한곳을 깊이 파기 시작했다. 한참 뒤 손에 쥐고 나온 것은 조개가 아니라 낡은 비닐 조각이었다.

노인은 비닐에 붙은 진흙을 털었다. 그것을 바구니에 넣지 않고 장화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호미를 들었다.

나는 그 동작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조개를 찾으려고 판 자리에서 쓰레기가 나왔다. 노인은 잠시 손을 멈췄지만, 그 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고 헛수고가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오래 갯벌에서 일했는지 몰랐다. 오늘 조개를 얼마나 캐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빈손으로 일어선 자리에 작은 구덩이가 남아 있다는 사실만 보았다.

그의 굽은 등이 내 실패를 위로해 주지는 않았다.

노인의 노동을 보며 내 실패가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 더 힘들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내 상실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잃어버린 세월은 여전히 내 것이었고, 이루지 못한 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노인은 다시 허리를 굽혔다. 호미 끝이 진흙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잠시 뒤 조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묻은 뻘을 엄지로 문질렀다.

껍데기 한쪽이 깨져 있었다.

노인은 잠시 들여다보다가 조개를 다시 진흙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구니를 옮겨 다음 자리를 팠다.

나는 깨진 조개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물이 들어오면 어떻게 될지도 몰랐다. 조금 전까지 노인의 손바닥에 놓여 있던 조개는 이제 검은 뻘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문득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토록 애쓴 시간은 무엇이 되는가.

실패한 사람에게 노력은 쉽게 과거가 되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동안의 시간이 한꺼번에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몸에 밴 습관이 남고, 포기한 일의 이름이 오래 마음을 맴돈다. 끝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모든 실패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노력은 끝내 보상받지 못한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도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을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패한 결과는 분명했다. 그러나 그 결과만으로 지난날의 모든 순간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무언가를 배우기도 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작은 성취에 기뻐한 날도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시작한 아침도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이 마지막 결과 하나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갯벌에는 노인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깊이 찍힌 자국 옆에 얕은 자국이 있었고, 한참을 돌아간 흔적도 있었다. 조개를 찾지 못한 자리와 조개를 건져 올린 자리를 발자국만으로 구별할 수는 없었다.

발자국은 그가 무엇을 얻었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다만 그곳을 걸었다는 사실만 남기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내 삶을 성과로만 헤아렸다.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무엇을 손에 넣었는지, 누구보다 앞섰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다 원하는 곳에 닿지 못하자 그 길을 걸었던 나 자신까지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날 갯벌에서 나는 선뜻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실패한 시간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으면서, 그 말을 믿는 순간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너무 쉽게 용서하게 될까 두려웠다. 아직 아픈 일을 괜찮은 일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노인은 어느새 멀어져 있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구덩이와 발자국이 남았다. 바구니가 얼마나 찼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갯벌 가장자리에 내려놓은 비닐 조각만 바람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낮은 물길을 따라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렀다. 곧 흩어져 있던 물웅덩이들이 서로 이어졌다. 진흙 위에 남은 발자국에도 물이 고였다.

물이 차오르자 깊은 자국부터 윤곽이 흐려졌다. 노인이 오래 서 있던 자리도 잠겼다. 조개를 캐던 구덩이와 빈손으로 돌아섰던 자리 사이에 더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나는 밀려오는 물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어느 자리에 조개가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누가 얼마나 애썼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정해진 때가 되자 돌아와 갯벌을 덮었다.

그 무심함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자연은 사람의 실패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갯벌이 다시 드러난다고 해서 잃어버린 기회가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물이 지운 발자국을 삶의 보상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물이 차오르는 동안 나는 노인의 느린 걸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조개 대신 비닐을 건져 올리던 손, 깨진 조개를 내려놓던 손, 빈손으로 일어섰다가 다시 진흙을 파던 손이었다.

어떤 장면은 아무런 해답을 주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는다.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를 꺼냈다. 답하지 않은 메시지가 그대로 있었다. 나는 한참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잘되지 않았다고.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었고, 다시 설명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구두 끝에 검은 개흙이 묻어 있었다. 마른 진흙은 잔금이 가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희끗한 소금기가 남았다.

나는 현관에 앉아 구두를 벗었다.

손가락으로 개흙을 털자 작은 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몇 번 더 문지르자 대부분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가죽의 접힌 틈에는 검은 흙이 조금 남았다.

젖은 천을 가져오려다가 그만두었다.

방 안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자료들이 있었다. 내일도 그 종이들은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현관 불을 끄기 전 구두를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검은 개흙이 접힌 틈에 박혀 있었다. 손톱으로 긁으면 떨어질 만큼 작은 흔적이었다.

나는 그대로 불을 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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