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백담사 여행|맑은 백담계곡과 돌탑, 아내와 마신 쌍화차

 

9월 중순, 아내와 백담사를 찾았다.

아직 단풍철은 아니었다. 산은 여름의 초록을 품고 있었지만 바람은 달랐다. 햇볕 아래에서는 따뜻했고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했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달력보다 먼저 산이 알려주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백담사 입구는 아침부터 붐볐다. 유명세만큼이나 넓은 주차장에는 승용차가 빼곡했다.

차에서 내리며 조금 의외였다.

설악산 깊은 곳의 절을 찾아왔는데 시작은 고요가 아니라 사람과 자동차였다.

하지만 그 번잡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용대리에서 백담사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갔을 때 버스비는 편도 2,500원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풍경은 금세 달라졌다.

상가와 주차장이 뒤로 사라지고 산과 계곡이 가까워졌다. 길은 좁았고 굽이가 많았다. 한쪽은 산비탈이고 다른 한쪽은 계곡이었다.

큰 버스가 그 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곡예를 하는 것 같았다.

굽이를 돌 때마다 버스가 계곡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나는 창밖을 내려다보다 슬그머니 몸을 안쪽으로 기울였다.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당신, 무서워?”

“아니. 그냥 길을 보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기사에게는 익숙한 길이겠지만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백담사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15분 남짓 산골을 달렸다.

백담사로 가는 방법은 버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백담계곡을 따라 걷는 길도 조성돼 있다. 인제군은 백담계곡에 도보 탐방로를 조성해 왔으며, 백담순례길 행사도 이 길을 활용한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계곡을 가까이 두고 천천히 백담사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다만 백담사 셔틀버스는 계절과 도로 상황에 따라 운행 시간이 달라지고 겨울에는 결빙으로 운행이 중단될 수 있다. 방문 전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버스에서 내려 백담사 쪽으로 걸었다.

그때 가장 먼저 내 눈을 붙잡은 것은 절의 전각이 아니었다.

물이었다.

백담계곡의 물이 놀라울 만큼 맑았다.

흔히 깨끗한 계곡을 두고 ‘바닥이 훤히 보인다’고 말한다. 그날 백담계곡에서는 그 표현을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다.

돌 하나하나가 물속에서 선명했다.

물이 맑아서 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물결이 햇빛을 받아 움직여야 그제야 그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내도 한동안 계곡을 바라보았다.

“물이 정말 깨끗하네.”

그 한마디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리고 물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돌탑이었다.

백담사 앞 계곡에는 크고 작은 돌탑이 셀 수 없을 만큼 이어져 있었다.

한 사람이 쌓은 것도 아닐 테고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탑은 손바닥만 했다. 어떤 것은 사람 허리만큼 높았다. 큰 돌 위에 작은 돌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있는 탑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는 계곡으로 내려가 돌 하나를 골랐다. 자리를 잡고 쪼그리고 앉아 이미 쌓여 있는 돌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나는 그 사람이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짐작하지 않았다.

다만 돌을 올려놓은 뒤 한동안 바라보던 뒷모습만 기억해 두었다.

백담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내설악 깊은 계곡에 자리한 사찰이다. 여러 차례 화재와 중건을 거치며 이름과 위치가 달라졌고, 조선 세조 때 백담사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산 깊숙한 곳에 있는 백담사는 오랫동안 수행처로 기능해 왔다.

그리고 이곳에는 만해 한용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만해 한용운은 1905년 백담사에서 출가해 수행했다. 승려이면서 시인이었고,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지금도 백담사에는 그의 문학과 사상을 기리는 공간이 있다.

백담사와 한용운의 인연을 알고 경내를 걸으면 이곳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깊은 산속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단순한 관광의 불편함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에서 조금 멀어져 자신을 들여다보기에는 이런 산골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토요일의 백담사는 고요한 수행처의 모습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많았다.

가족도 있었고 등산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 합장하는 사람, 계곡을 바라보는 사람이 뒤섞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번잡하다는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의 말소리 사이로 계속 물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나갔고 물은 계속 흘렀다.

경내도 무척 깨끗했다.

나는 절에 가면 오래된 건물만큼 마당을 본다. 마당과 길을 보면 그곳을 돌보는 사람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백담사에는 그 손길이 곳곳에 있었다.

아내와 천천히 경내를 둘러본 뒤 차를 한잔하기로 했다.

쌍화차를 주문했다.

아내와 마주 앉았다.

잔에서 김이 조금씩 올라왔다.

아내는 두 손으로 잔을 감쌌다. 뜨거웠는지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나도 한 모금 마셨다.

달고 따뜻했다.

그 순간에는 별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애써 찾아간 명소보다 뜻밖의 짧은 순간이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내게 백담사의 쌍화차가 그랬다.

아내와 나는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조금 전 보았던 계곡 이야기,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 버스가 무섭게 달렸다는 이야기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백담사를 떠올리면 그 장면이 먼저 생각난다.

아내가 두 손으로 쌍화차 잔을 감싸고 있던 모습.

창밖으로 들어오던 9월의 햇빛.

그리고 조금 전까지 바라보았던 맑은 물.

젊었을 때 여행을 하면 유명한 곳을 하나라도 더 보려고 서둘렀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많이 보는 것보다 오래 바라보는 것이 좋아졌다.

백담계곡 앞에서도 그랬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말없이 물을 바라보았다.

계곡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오갔다.

어떤 사람은 돌탑을 쌓았고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나는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굳이 쌓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은 마음이 그곳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냥 바라보기로 했다.

돌 사이로 물이 흘렀다.

돌은 그 자리에 있고 물은 계속 지나갔다.

나는 거기에 인생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세월이라는 말도 붙이지 않았다.

그날의 물은 그냥 맑은 물이면 충분했다.

돌탑은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이면 충분했다.

아내가 내 옆에 서 있다는 것도 그날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다시 버스를 탔다.

올 때는 아슬아슬했던 산길이 돌아갈 때는 조금 익숙했다.

계곡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버스가 굽이를 돌 때마다 백담사는 조금씩 멀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떠나면서 더 또렷해지는 것이 있었다.

맑은 물이었다.

백담사를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실용적으로 기억해 둘 것도 있다. 백담사는 용대리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으며, 계절과 기상 여건에 따라 운행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도보로 백담계곡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특히 가을에는 방문객이 많으므로 주말에는 시간에 여유를 두는 편이 좋다.

그리고 백담사에 도착하면 경내로 곧장 들어가기 전에 계곡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보기를 권하고 싶다.

백담사를 이해하는 첫 장면은 어쩌면 법당보다 그 물에 있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이 수행했던 산사도 그 계곡 안에 있고, 사람들이 쌓아놓은 수많은 돌탑도 그 물가에 있다.

나에게도 그랬다.

백담사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창한 답을 하지 못한다.

9월의 맑은 물.

끝을 헤아리기 어려웠던 돌탑.

좁은 산길을 곡예하듯 달리던 버스.

그리고 아내와 마주 앉아 마셨던 쌍화차 한 잔.

그것이 내가 다녀온 백담사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사진은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갔다.

버스표도 남아 있지 않다.

쌍화차의 맛도 이제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한 장면은 남아 있다.

백담계곡의 맑은 물 앞에 아내와 나란히 서 있던 순간이다.

나는 그 장면에 더 이상 어떤 의미도 보태지 않으려 한다.

좋았던 날은 설명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9월 중순의 백담사가 그랬다.

물은 맑았고,

아내는 내 곁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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