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 북단으로 향하는 길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풍경이 나란히 있었다.
철책은 길게 이어졌고, 그 곁의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있었다. 고개 숙인 벼이삭이 가을 햇살을 받아 출렁였다. 곳곳에서는 수확이 한창이었다.
그날 나는 아내와 고모님을 모시고 강화 연미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을 태운 차가 강화도 북단으로 접어들자 차창 밖으로 철책과 황금빛 논이 번갈아 스쳤다. 하나는 사람이 만든 경계였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일군 삶의 자리였다.
두 풍경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바로 곁에 있었다.
그 길 끝에서 월곶돈대와 연미정을 만났다.
강화 연미정(燕尾亭)은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 강화도 동북쪽 월곶돈대 안에 자리한 정자다. 한강과 임진강에서 흘러온 물이 이 부근에서 여러 물길로 갈라지는 모습이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연미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연미정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며,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아름다운 경승지이지만 역사의 흔적도 깊다.
1627년 인조 5년,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이 강화조약을 맺은 장소가 연미정이다. 당시 상대국은 청나라가 아니라 후금이었다.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꾼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전쟁을 멈추기 위한 협상이 이루어졌던 곳에서 오늘날 다시 북녘을 바라본다.
연미정에서는 과거가 좀처럼 과거로만 머물지 않는다.
정자 주변의 오래된 느티나무도 이곳의 시간을 말해준다.
연미정에는 오랫동안 두 그루의 고목이 정자와 함께 서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한 그루는 2019년 태풍 ‘링링’으로 크게 훼손됐다.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라고 해서 모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자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았다.
마침 썰물이었다.
물이 물러난 한강 하구는 넓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 건너 북녘땅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이 보였다. 황해도 개풍군 일대의 산과 들이 눈앞에 들어왔다.
한강 하구의 물길과 섬도 고요했다.
그 풍경을 바라보던 고모님이 말했다.
“저기, 금방이라도 걸어서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깝네 그려.”
짧은 말이었다.
나는 다시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썰물에 드러난 강바닥과 가까이 보이는 북녘 풍경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
그러나 고모님의 말을 듣고 나니 눈앞의 거리가 전과 다르게 보였다.
가까이 보이는 것과 갈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연미정에서는 지도 위의 선으로만 알던 분단이 실제 풍경이 된다.
강 건너에도 산이 있고 들이 있다. 하늘은 이쪽에서 저쪽까지 막힘없이 이어져 있다. 바람도 강을 건너온다.
눈에 보이는 자연에는 경계선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마음대로 건널 수 없다.
그 사실 앞에서는 긴 설명보다 고모님의 한마디가 더 정확했다.
“걸어서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깝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연미정 앞의 물길에는 더 오래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과거 서해에서 한강을 거슬러 서울로 향하던 배들은 이 부근에 닻을 내리고 조류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한강 하구를 지나려면 물때를 읽어야 했다.
배는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떠날 수 없었다.
물이 길을 열어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정자 아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그 옛날 이곳에서 물때를 기다렸을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돛을 내린 배들이 머물고, 뱃사람들은 물의 방향을 살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다시 돛을 올려 한강을 따라 서울로 향했을 것이다.
지금 그 배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은 남았다.
밀려왔다가 물러가고, 다시 차오른다.
사람의 역사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한강과 임진강에서 내려온 물은 지금도 이곳을 지나 서해로 향한다.
정자에서 시선을 돌리면 철책 너머로 가을 들판이 펼쳐진다.
벼는 누렇게 익어 있었다.
접경지역에서도 봄이면 모를 심고, 여름이면 논을 돌본다. 가을이 오면 벼를 거둔다. 철책이 있다고 계절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날 본 철책과 황금빛 논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하나는 경계였고 하나는 삶이었다.
둘은 같은 가을 햇살 아래 놓여 있었다.
강화 연미정 여행이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풍경과 역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날 내 곁에는 아내와 고모님이 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 오래된 정자에 올라 같은 강을 바라보았다.
1627년이라는 연도는 멀다. 정묘호란도 책에서 읽을 때는 먼 역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역사가 지나간 자리에 가족과 함께 서면 시간은 조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오래된 정자가 있다.
세월을 견딘 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있다.
역사는 먼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서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누군가 무심히 건넨 한마디를 오래 기억하는 일도 결국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날 연미정에서는 오래된 정자만큼이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가 있고, 고모님이 있고, 내가 있었다.
우리 세 사람 앞에서 강물은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연미정을 뒤로하고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올 때 보았던 철책과 논이 다시 이어졌다.
같은 길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연미정이라는 이름은 제비꼬리를 닮은 물길에서 왔다.
갈라진 물은 각자의 길을 따라 흘러 결국 서해로 나아간다.
나는 그 풍경에 굳이 거창한 말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강은 강의 일을 하고 있었다.
물이 빠지면 바닥을 드러내고, 때가 되면 다시 차오른다. 한강과 임진강에서 흘러온 물은 오래전부터 그랬듯 오늘도 바다를 향해 간다.
우리도 돌아갈 시간이었다.
차가 멀어지면서 연미정도, 월곶돈대도, 강 건너 북녘땅도 조금씩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고모님의 한마디만은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저기, 금방이라도 걸어서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깝네 그려.”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 보였던 강 건너.
그러나 갈 수 없는 그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물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내와 고모님을 모시고 다녀온 강화도 북단의 가을날.
우리가 돌아온 뒤에도 그 물은 오래도록 제비꼬리 같은 물길을 지나 서해를 향해 흘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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