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線(단선), 모든 연결이 끊어진 밤, 비로소 내 숨소리가 들렸다

斷線(단선) — 삶의 선이 끊어진 자리에서

 

냉장고가 낮게 뿜어내던 웅웅거림이 뚝 끊긴 것은 여름밤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방 안의 모든 불빛이 한꺼번에 스러졌다. 모니터의 푸르스름한 잔상도, 모뎀 뒤편에서 맴돌던 미세한 전자음도 자취를 감추었다.

베란다 밖 아파트 단지들은 여전히 환했다. 수많은 창문마다 불빛이 박혀 있었다. 그런데 내 집 하나만 세상의 거대한 전력망에서 툭 잘려 나간 섬처럼 캄캄했다.

누전 차단기를 올려보았다.

툭.

차단기는 곧바로 다시 떨어졌다. 내 집에만 찾아온 갑작스러운 단전이었다.

처음 몇 분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답답했다. 휴대폰 화면을 괜히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손전등을 들고 부엌과 방 사이를 몇 번이나 서성였다.

소음과 불빛이 빠져나간 공간은 생각보다 넓고 서늘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동안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주방 환풍기의 떨림도 없었다. 모니터 뒤편에서 열을 식히던 작은 팬 소리도 사라졌다.

그제야 창밖 나뭇잎이 바람에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숨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들이쉬고, 다시 내쉬는 숨.

전기 제품들이 쉬지 않고 뱉어내던 인공의 소음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내 숨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삶의 어떤 선도 그렇게 예고 없이 끊어지곤 했다.

마흔을 바라보던 해였다. 갑작스럽게 몸에 이상이 생겼고, 십 년 넘게 이어오던 일상을 멈추고 병가를 내야 했다.

진단서를 가방 깊숙이 넣고 병원 문을 나왔다.

길 건너편의 빌딩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눈부셨다. 자동차들은 신호에 따라 움직였고, 사람들은 횡단보도를 건넜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나만 그 흐름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병가를 낸 뒤에도 나는 업무 연락망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밤이면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메시지는 올라왔다. 회의는 잡혔고, 내가 맡았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자꾸 확인했다.

내가 없는 곳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쓸쓸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평일 오후에 혼자 집에 앉아 회사 단체대화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를 알리는 숫자가 계속 늘어났다.

손가락을 화면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방 안이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그때는 그 조용함을 견디지 못했다.

다시 전기가 끊긴 여름밤, 나는 그때의 정적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무언가를 서둘러 연결하려 하지 않았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식탁 한쪽을 스쳤다.

작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며칠 전 어머니가 두고 간 메모였다.

“국은 냉장고 두 번째 칸에 있다. 바빠도 밥은 거르지 마라.”

한동안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내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전기가 끊기자 업무 연락도, 인터넷도, 끊임없이 들어오던 알림도 함께 멎었다. 그제야 식탁 한구석에 놓인 몇 줄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신호가 사라진 자리에 오래 남아 있던 사람의 온기가 있었다.

나는 손전등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문득 냉장고 속의 국이 생각났다.

언제부터인가 밥을 먹는 일보다 답장을 보내는 일이 먼저였고, 잠드는 일보다 내일의 일정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병가를 내고도 나는 쉬는 법을 알지 못했다. 몸은 멈춰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내가 빠져나온 자리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끊어진 것을 서둘러 이어 붙이고 싶지 않았다.

연결이 끊겼다는 사실보다 그 연결을 붙들고 있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글씨가 그랬고, 창밖의 나뭇잎이 그랬다.

무엇보다 내 숨이 그랬다.

얼마나 지났을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켜졌다.

잠시 뒤 냉장고도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모뎀의 작은 불빛이 하나씩 살아났고, 방 안에는 다시 익숙한 소리가 차올랐다.

전기는 다시 연결되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조금 더 넓게 열었다.

식어 있던 방 안으로 늦은 여름밤의 바람이 들어왔다. 커튼이 천천히 흔들렸다.

나는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쉬었다.

방 안을 채운 냉장고의 진동음 사이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 숨소리가 차분히 겹쳐 들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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