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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157

엄마, 우리 집에 가자! 총성이 오가는 전쟁터에서군인들이 품는 마지막 소망은 다름 아닌 ‘집’이다.귀환 명령보다도, 상관의 격려보다도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건조용한 골목길, 현관문 너머의 익숙한 공기다. 집이란 단어는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다.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는 말인데,들으면 마음이 풀린다. 나는 한 장례식장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 있다.어머니의 관 앞에서 딸이 눈물로 외쳤다.“엄마, 우리 집에 가자...”그 짧은 말에 사람들이 울었다.그녀에게 집은 곧 어머니였다.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집’이그날 무너졌다. 집은 단순한 벽과 지붕이 아니다.집은 기억이고, 온기이며, 관계다.누군가 늦게 들어올 때까지 켜둔 불빛.식탁 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TV를 보던 시간. 그렇게 우.. 2025. 5. 11.
누가 나를 안아줄까? 오늘 아침, 거울 앞에 선다.팔을 교차해 어깨를 감싸 안는다.‘버터플라이 허그’—트라우마 치료에 쓰인다는 그 동작.그냥 따라 해봤다.그런데 이상하다.눈물이 났다. 이유도 없이, 조용히. 30년.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참 바쁘게 달려왔다.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많았지만,나를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병원에서“이 정도면 많이 참으셨어요.”의사의 말에나는 그냥 울어버렸다.그렇게 꾹꾹 눌러왔던 게 터져 나왔다. 몸은 자주 붓고,계단을 오르다 숨이 찬다.잠깐 들른 마트에서도 다리가 욱신거린다.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단단해졌다.자주 부서지고 다시 붙었기 때문일까. 문득, 묻는다.“이런 나를 누가 돌봐줄까?”가족? 친구? 사회? 아니다.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가장 진심으로 안아줄 수 있는 사람—바.. 2025. 5. 10.
한 끼의 위로, 한 끼의 질문 요즘은 화면 속이 더 배부릅니다.스마트폰만 켜면 누군가는 김치찌개를 퍼먹고,누군가는 치즈 닭발에 눈물을 흘립니다.“와, 저걸 다 먹는다고?”입은 감탄하지만, 속은 묘하게 허전합니다. 처음엔 단순히 신기했습니다.20인분을 혼자 먹는다?“위장은 뭐로 만든 걸까?”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죠.나는 먹으면 바로 체하니까요.하지만 요즘은 다르게 보입니다.저렇게까지 먹어야 할까?누가 보라고 먹는 걸까? 이제 ‘잘 먹는 것’은 능력이고,‘맛있게 먹는 척’은 기술이 되었습니다.식사는 생존이 아니라 콘텐츠,요리는 감탄이 아닌 조회 수의 재료입니다.혼밥이 외로운 이들을 위해먹방이 친구가 되어준다지만,그건 진짜 위로일까요,아니면 더 깊은 허기를 부추기는 걸까요? 요즘 사람들은 말합니다.“먹방 보면 대리만족 돼요.”하지만 진짜 배.. 2025. 5. 9.
「나는 과녁이 아니었다」 살다 보면 문득 그런 느낌이 든다.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아니면 이미 나를 틀에 넣었다는 느낌. 어떤 말은 날카롭게 박히고,어떤 선택은 나를 스쳐 지나가흔적만 남긴다. 그럴 때 나는 마음을 숨긴다.상처받지 않기 위해,들키지 않기 위해. 겉으론 웃지만그 안에서 내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감정은 숨 쉴 틈을 잃는다. 누군가는 말한다.“그럴 의도는 아니었어.”또 어떤 이는,“애초에 널 신경 쓴 적 없어.” 라고. 무심함과 의도, 그 사이에서나는 조용히 묻는다. "나는 누구에게 중요한 존재였을까?"어쩌면가장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 건바로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사람 없는 들판을 걷다나는 깨달았다. 과녁은 아니었다.비난의 대상도,기대의 중심도 아니었다. 나는방향을 잃은 화살이었다.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2025. 5. 8.
텔레비젼 앞에서 밤이 깊었습니다.집 안은 조용하지만, 거실 한가운데서텔레비전이 쉼 없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바람 없는 방 안에서 혼자 부는 바람 같았습니다. 아래 자막이 붉게 흐르고,누군가는 울고 있었습니다.익숙한 뉴스, 익숙한 눈물인데오늘은 유난히 낯설었습니다. 리모컨을 들고 앉아 있었지만채널은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습니다.웃음이 터지는 예능도,눈물이 흐르는 드라마도모두 감정을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나는어디쯤 서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진짜를 고르기엔 세상이 너무 부드럽고거짓을 밀어내기엔 내 손이 너무 무겁습니다.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주인공의 말에 답이라도 하듯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아버지는 말 없이 리모컨을 건넵니다.그 손끝엔 말보다 깊은 시간이 묻어 있습니다.그 순.. 2025. 5. 8.
우리는 누구의 알을 깨며 사는가 점심으로 찐 달걀을 먹다껍질을 까던 손이 잠시 멈췄다.그걸 낳은 닭이 문득 떠올랐다. 기계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알을 낳는 삶.닭은 그것을 스스로의 운명이라 믿었을까,아니면, 인간이 그렇게 믿게 만든 걸까. 껍질을 벗기자새하얀 흰자 속에 노란 노른자가해처럼 나를 바라본다.병아리였을 수도 있고,그저 내 점심이었을 수도 있다. 닭은 정말 이 알을 나에게 주었을까.아니면, 나는 빼앗은 걸까.나는 여전히, 조용히 씹으며 생각 중이다. 우리는 알을 삶고,지단을 부치고,때로는 화가 나면 그것을 던지기도 한다.영양이 어쩌고, 피부가 어쩌고 말하면서정작, “고맙다”는 말은잊은 지 오래다. 한 번은고등학생 시절,친구와 싸우다 달걀을 던진 적이 있다.그때 깨진 건 달걀이 아니라,서툰 내 마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우주도.. 2025.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