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왕, 물 위에 쓰인 안부|시흥 물왕저수지에서 걷는 가장 따뜻한 산책

물왕, 물 위에 쓰인 안부

 

살다 보면 문득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신기하게도 오래된 벗에게서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잘 지내지? 조만간 한번 넘어갈게.” 짧은 안부 한마디에 잔잔했던 마음은 작은 물결을 일으킵니다.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나온 삶이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벗이 시흥을 찾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시흥 물왕저수지로 향합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풍경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오래 품어 둔 장소가 하나쯤 있습니다. 내게는 언제나 물왕저수지가 그렇습니다.

지금은 물왕호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지만,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물왕저수지라는 이름이 더 정겹습니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호수가 품고 있는 풍경과 사람을 맞이하는 넉넉함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시흥 가볼 만한 곳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가장 먼저 이곳이 떠오릅니다.

주말이면 물왕저수지로 들어서는 길은 긴 차량 행렬로 북적입니다. 조용한 호수를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조금 놀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이 호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가족은 가족대로, 연인은 연인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각자의 시간을 안고 이곳을 찾습니다.

호수를 따라 늘어선 음식점과 카페에는 저마다 다른 온기가 흐릅니다. 창가에 마주 앉아 따뜻한 식사를 나누고 차 한 잔을 앞에 두면, 오래 묵혀 두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풀려나옵니다.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지난날의 기억들이 차분히 이어집니다. 물왕저수지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물왕저수지 데크길로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호수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은 약 4.2킬로미터입니다.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립니다. 길 대부분은 평탄한 데크로 이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물왕저수지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는 장소입니다.

데크길을 걷다 보면 호수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걸어옵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바람이 스치며 작은 물결을 만듭니다. 가끔 물고기가 수면을 가르며 튀어 오르면 동그란 파문이 호수 위를 천천히 퍼져 나갑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평범한 풍경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걷는 동안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조용해집니다. 물왕저수지 데크길이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산책길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호수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붉게 물든 노을이 수면 위에 길게 내려앉고, 물빛은 하루를 천천히 품어 안습니다. 그 풍경 앞에서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벗도, 그를 맞이한 나도 잠시 걸음을 멈춘 채 같은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좋은 장소란 결국 사람을 말없이 머물게 하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물왕저수지를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평일이나 오전 시간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오전 10시 이전에는 비교적 한적한 분위기에서 호수의 맑은 공기와 잔잔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도 한결 편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시흥 가볼 만한 곳이지만, 시간을 조금만 달리하면 호수가 가진 본래의 고요함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시흥 물왕저수지는 단순히 물을 담아 둔 저수지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안부를 묻고, 잠시 쉬어 가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공간입니다. 오래된 이름인 물왕저수지로 불러도, 새로운 이름인 물왕호수로 불러도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호수를 따라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는 계절이 머물고, 추억이 쌓이고, 다시 만날 약속이 새겨집니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 내게 시흥에서 가장 먼저 가볼 곳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물왕저수지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언젠가 또 오래된 벗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다시 그 물길 위를 천천히 걸으며 서로의 안부를 나눌 것입니다. 물 위에 번지는 작은 파문처럼, 사람의 마음도 따뜻한 만남 하나로 오래도록 잔잔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 호수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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