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차 교사의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긴 항해|퇴근 오디세이

퇴근 오디세이

 

오후 4시 30분.

종소리의 잔향이 콘크리트 복도를 따라 희미해질 무렵, 3학년 4반 교실 창문틀이 둔탁하게 울렸다.

“쿵!”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녀석이 가방끈을 고쳐 매며 소리쳤다.

“선생님! 종 쳤어요! 주번 청소 내일 한꺼번에 하면 안 돼요?”

칠판에 적어 내려가던 ‘지방 자치와 주민 참여’ 단원의 판서를 지우던 지우개가 공중에서 멈칫했다. 손가락 주름 사이에 낀 하얀 분진이 사방으로 자욱하게 날렸다. 교탁 위에는 오늘 아이들이 제출한 형성평가지와, ‘학부모 상담 일지 재작성 요망’이라는 노란 포스트잇이 붙은 서류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번, 뒤창문 잠그고 가. 내일 아침에 검사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재 교실 문이 비명을 지르며 드르륵 열렸다. 이십 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소음과 땀 냄새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에는, 텅 빈 책상들과 웅웅 거리는 냉난방기 소리만이 고여 있었다.

교무실로 내려와 모니터를 끄려는데, 화면 우측 하단에 익숙한 사각형 팝업창이 반짝였다.

[교감: ‘내일 교육청 종합 감사 관련, 사회과 평가 기준 재정립 건으로 5시 20분 긴급회의 개최합니다.’]

마우스 패드 위에 올려둔 손가락 끝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32년 차 교사의 손가락은 때로 잔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나는 마우스 대신 컴퓨터 본체의 전원 버튼을 5초 동안 꾹 눌렀다. 틱, 소리와 함께 까만 화면 속으로 내 얼굴이 멍하니 비쳐 들었다. 가방을 챙겨 복도로 나서는 등 뒤에서 “방 선생, 어디 가?”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운동화 뒤축을 구겨 신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교문을 나서자 여름 끝자락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매연 냄새와 함께 밀려들었다.

출항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는 ‘510번: 14분 후 도착’이라는 붉은 글씨가 점멸하고 있었다. 아스팔트 지열이 올라오는 정류장에는 넥타이를 풀고 젖은 셔츠를 끌어올리는 사내들과, 몸집만 한 학원 가방을 짊어진 학생들이 뼛속까지 지친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잠시 후, 찢어지는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거친 매연을 뿜으며 버스가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서로의 어깨를 밀치며 꾸역꾸역 안으로 짓눌려 들어갔다. 나 역시 그 수직의 틈새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시련

밀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손잡이조차 잡지 못하고 서 있는데, 진동이 울렸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 화면에는 조금 전 외면하고 나온 ‘교감’의 이름이 떠 있었다. 진동은 차가운 기계음처럼 무겁게 울려댔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화면을 꺼버렸다. 어떤 목소리는 듣지 않는 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버스는 퇴근길 병목 구간에 걸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퀴퀴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옆 사람의 축축한 어깨가 내 팔에 지속해서 부딪혔다. 그때, 정류장에서 들어온 한 학생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낮에 수업 시간에 졸다가 지적했던 3반 녀석이었다. 녀석은 찔리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보았고, 나 역시 좁은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버스 안에서도 교실의 공기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그때 바지 주머니 속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엔 ‘성식’이었다. 인근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마흔 해 가까이 술잔을 비워온 동료였다.

“어, 성식아.”

“너 어디냐?”

“나 버스 탔다. 집 쪽으로 가는데 도로가 완전히 꽉 막혔네.”

“내려서 대야동 신천연합병원 뒤쪽으로 나와라. 나 포장마차 들어왔다.”

“나 오늘 몸이 좀 무겁다…”

“소주 한 잔 안 들이붓고 집에 들어가면, 내가 오늘 밤에 진짜 누구 하나 때려잡을 것 같아서 그래. 빨리 온나.”

뚝 끊긴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나는 막혀버린 도로 한가운데서 다음 정류장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벨을 눌렀다.

동행

상가 골목 끝자락, 노란 천막을 늘어뜨린 포장마차 안은 삼겹살 기름 탄 내와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성식이는 젓가락 끝으로 고기 비계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

내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묻자, 성식이가 말없이 내 잔을 채웠다. 잔이 넘칠 듯 차올랐다.

“말도 마라. 오늘 2학년 교실에서 어떤 놈이 수업 중에 이어폰 꽂고 엎드려 있길래 빼라고 했더니, 눈을 똑바로 뜨고 ‘선생님이 뭔데 남의 인권 침해해요?’ 하더라.”

성식이가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더니, 빈 잔을 탁자 위에 강하게 내려놓았다.

“그 소리를 듣는데, 갑자기 분통이 터지는 게 아니라 머릿속이 텅 비더라고. 칠판 앞에 서 있는 내가 꼭 유령 같았어.”

나 역시 묵묵히 잔을 비웠다. 소주 한 잔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교탁 위에 남겨두고 온 하루가 조금씩 녹아내렸다. 오늘 하루 교사라는 가면을 쓰느라 삼켜야 했던 말들이 소주잔의 기포처럼 터져 나왔다.

“야, 방 선생.”

“왜.”

“우리 딱 한 시간만 목소리 좀 찢어발기고 가자. 이대로 집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서 잠 못 잔다.”

해방

지하 1층 노래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눅눅한 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식이는 벽에 걸린 탬버린을 양손에 쥐었고, 나는 반주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첫 곡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였다. 화면에 화려한 조명과 함께 반주가 흘러나왔다. 성식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고음 부분에서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온몸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어지는 내 차례에는 들국화의 ‘행진’을 눌렀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겨웠지만~”

탬버린을 벽에 부딪치며 목청껏 소리를 쳤다. 스피커에서 하울링이 울렸지만 아무도 끄지 않았다. 30년 넘게 칠판 앞에서 가다듬었던 정돈된 목소리,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라고 타이르던 차분한 어조는 온데간데없었다.

한 시간의 제한 시간이 끝나고 반주기가 꺼졌다. 사방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서로의 쉬어버린 목소리와 땀에 젖은 이마를 바라보며 우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선생도 아니었다.

“가자, 이제.”

“그래, 가자.”

노래방 문을 열고 나오자 차가운 밤공기가 달아오른 뺨을 식혀 주었다. 가슴속 앙금은 깨끗이 씻겨 나가 있었다.

귀환

밤 11시 20분.

거실에는 스탠드 조명 하나만 주황빛을 나지막하게 비추고 있었다.

TV 화면은 무음으로 처리된 채 뉴스 자막만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고, 그 앞 소파에 아내가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아내의 손에는 읽다 만 수필집이 펼쳐져 있었고, 안경은 코끝까지 흘러내려 있었다.

아내는 고개가 밑으로 툭 떨어질 때마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거실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적막을 채웠다. 아내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식어버린 보리차 잔을 만지작거리며 현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마 침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소파 끝에 걸터앉아 잠들지도 못한 채 기다림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띠- 띠- 띠- 띠- 띠리릭.”

현관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울렸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자, 아내가 안경을 고쳐 쓰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왔어요?”

쉬어버린 목소리로 “어, 좀 늦었지” 하고 답하자, 아내는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옷에 밴 약간의 술 냄새와 노래방 특유의 냄새를 맡았을 법도 한데,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식탁 위에 덮어두었던 쟁반을 치우며 내밀었다.

“국 따뜻할 때 한 그릇 먹을래요?”

“괜찮아. 씻고 잘게. 당신도 어서 들어가 자.”

가방을 거실 한구석에 내려놓으며 아내의 무던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교사였고, 버스에서는 승객이었으며, 술집에서는 친구였다. 하지만 이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오늘도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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