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가 아니라 삶의 무게다|노화되어 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일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넘어졌던 날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겨울 초입이었다.
베란다 창문 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오던 저녁,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졌어.”

급히 집으로 갔을 때 아버지는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지 못한 채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평생 남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쌀가마니 두 포대를 한 번에 들었다고 자랑하던 사람. 그런 아버지가 양말 젖은 발로 미끄러진 뒤 한참 동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다.

뼈와 체온만 남은 사람 같았다.

젊은 날의 나는 늙음을 막연하게 생각했다. 머리가 희어지고 주름이 생기는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노화는 단순히 몸이 늙는 일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평생 지켜 온 존엄이 천천히 흔들리는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아까 그 말 했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그러나 같은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자 어느 순간 짜증이 났다.

“방금 말했잖아요.”

나는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고, 아버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침묵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괜히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뉴스가 흘러나왔지만, 방 안에는 이상하리만큼 적막이 길게 깔렸다.

늙어 간다는 건 어쩌면 세상보다 먼저 가족 안에서 작아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 말은 젊은 사람들의 위로에 더 가깝다. 실제의 늙음에는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노화에는 연륜이 있다.
질병이 있다.
고독이 있다.
그리고 가난이 있다.

무엇보다 기다림이 있다.

병원 예약 날짜를 기다리고,
자식에게 전화 오기를 기다리고,
몸이 덜 아픈 날을 기다린다.

늙은 사람의 하루는 기다림으로 이루어진다.

몇 달 전 정형외과에 갔을 때였다.

대기실 한쪽에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계속 기침을 했고, 할아버지는 작은 귤 하나를 천천히 까 주고 있었다. 귤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았는지 손끝이 자꾸 떨렸다. 한참 만에 귤 조각 하나를 건네자 할머니가 말했다.

“당신은 손에 힘도 없네.”

핀잔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속에는 오래 산 사람들만의 체념과 애정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젊은 사랑은 뜨겁지만, 늙은 사랑은 조용하다.
불꽃처럼 타오르기보다 서로의 무너짐을 붙들어 주는 쪽에 가깝다.

노화는 몸보다 먼저 관계를 바꾼다.

언젠가부터 친구들의 안부 인사는 건강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혈압약은 먹고 있냐.”
“당뇨 수치는 괜찮냐.”

젊은 날에는 꿈을 이야기했는데, 이제는 병명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가끔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 휴대전화 속 이름 하나가 영영 울리지 않는 번호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저장된 친구 번호 몇 개를 지우지 못한다.

삭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이 정말 끝나는 것만 같아서다.

늙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음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천천히 지워지는 감각 때문이다.

저녁 무렵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하루 세 끼를 먹으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버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고.

혼자 먹는 밥은 빨리 식는다.

말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들은 자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기억이 흐려져서만은 아니다.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날씨 이야기를 건네고, 병원 접수창구 직원에게 괜히 농담을 던지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예전에는 그런 노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사람은 늙어서도 끝까지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가난은 늙음을 더욱 서럽게 만든다.

시장에 가면 오래 서서 가격표를 바라보는 노인들이 있다. 몇백 원 더 싼 채소를 고르기 위해 한참 동안 망설인다. 젊은 날의 가난은 어떻게든 견디면 내일이 있을 것 같지만, 늙어서의 가난은 사람의 마음부터 닳게 만든다.

어느 겨울날, 나는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로 저녁을 때우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뜨거운 물을 붓고 의자에 앉아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던 그 사람은 라면보다 먼저 손을 녹이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뒤 이상하게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인간의 비애는 거창한 절망 속보다, 그렇게 조용한 생활 속에 숨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간다.

화분에 물을 주고,
마트 시식 코너에서 귤 한 조각을 받아 먹고,
손주 사진 한 장에 오래 웃는다.

삶은 대단한 희망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은 작은 애착들로 겨우 이어진다.

오늘 아침 나는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눈가의 주름은 더 깊어졌고, 흰머리도 늘어났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젊음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얼굴에 새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노화되어 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단순히 늙어 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끝내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밥을 먹고,
내일을 기다리는 인간의 쓸쓸하고도 위대한 생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늙어서야 비로소
타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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