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벽 위 소나무를 바라보면 묻고 싶어진다. 하필이면 왜 그곳이었느냐고. 흙도 넉넉하지 않고 바람조차 쉬어 가지 않는 자리다. 나무는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휘어진 몸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묵묵히 살아내는 삶의 철학 에세이는 대개 화려한 성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루를 견디고, 다시 아침을 맞는 평범한 사람의 등에서 시작된다. 삶은 우리에게 좋은 자리부터 골라 주지 않는다. 때로는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절벽부터 내민다.
처음에는 세상을 원망한다. 왜 나만 돌 틈에 놓였는지, 왜 다른 나무에는 넉넉한 흙과 햇볕이 주어졌는지 따진다. 그러나 원망이 길어져도 절벽은 평지가 되지 않는다. 결국 남는 일은 작은 틈을 찾아 뿌리를 밀어 넣는 것이다. 무너짐 속에서도 겨자씨만큼 남은 희망은 바로 그 틈에서 자란다.
활엽수들이 햇살을 나누며 곧게 치솟을 때, 소나무는 그늘진 벼랑에서 몸을 비튼다. 곧게 자라지 못한 가지에는 바람의 방향이 새겨지고, 갈라진 껍질에는 지나온 겨울이 남는다. 흠이라고 여겼던 흔적들이 사실은 살아남은 증거였다.
나도 오랫동안 번듯한 자리를 부러워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삶은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몇 번의 굽이와 막다른 길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아 만나는 새로운 삶은 계획표 바깥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겨울날 학교 화단 끝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낡은 담벼락 곁이라 아이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는 아침마다 그 나무 옆을 걸었다. 어느 날 가지에 쌓인 눈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공교롭게도 그날 내 마음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나무는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라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견딘다는 것은 아프지 않은 척하는 일이 아니라, 아픈 채로도 뿌리를 놓지 않는 일임을 그 나무가 가르쳐주었다.
소나무는 타인과 싸우지 않는다. 옆 나무보다 높아지겠다고 가지를 세우지도 않는다. 싸움의 상대는 어제의 자신이다. 한 번 더 바람을 견디고, 한 뼘 더 바위 안으로 뿌리를 내리는 일.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승리는 대개 박수도 순위도 없다.
사람들은 휘어진 줄기를 보고 못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솔방울 하나를 보고 별나다며 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는 부끄러운 장식이 아니다. 상처 위에서 다시 피어난 삶처럼, 부서진 자리는 새로운 생명이 비집고 나오는 문이 되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을 흔든다. 천둥과 번개는 예고장을 보내지 않는다. 뜻밖의 이별, 실패, 가난,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도 있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강한 사람은 흔들린 뒤에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이다.
절벽 위 소나무도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뿌리는 돌에 막혔고, 가는 가지는 바람에 수없이 꺾였을 것이다. 살아남은 세월이 나무를 강하게 만들었다. 견딤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날들이 쌓여 생긴 굳은살이다.
이제 나는 좋은 자리만을 바라지 않는다. 어디에 서 있든 내 빛깔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의 정원에 옮겨 심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하루를 푸르게 살아내면 된다.
언젠가 내가 지나온 절벽에도 작은 그늘 하나 남을 것이다. 지친 누군가가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를 수 있다면, 휘어진 삶도 쓸모가 있었던 셈이다. 반듯하지 않아도 나무는 그늘을 만든다. 사람도 그렇다.
오늘도 바람은 분다. 소나무는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고, 제 몸을 조금 내어주며 견딘다. 어쩌면 삶의 지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꺾이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주는 대신, 흔들리면서도 뿌리만은 놓지 않는 것.
지금 나는 어느 절벽에 서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끝내 푸르게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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