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한 번 크게 흔들려 내려앉으면 바닥에 닿았다고 생각한다. 더는 떨어질 곳이 없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삶은 생각보다 깊었다. 무너졌다고 여긴 자리 아래에 또 다른 낙폭이 숨어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우울이라는 낯선 방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옅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은 날마다 조금씩 가라앉았다. 웃음은 얼굴에 잠시 빌려 쓰는 표정처럼 어색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부터 버거웠다. 오늘을 살아야 할 이유보다 다시 하루를 견뎌야 한다는 피로가 먼저 찾아왔다. 기대할 힘도, 내일을 궁금해할 마음도 흐려졌다. 우울 속에서도 버려지지 않고 다시 살아난 경험을 돌아보면, 회복은 멀리 있는 기적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은 생의 작은 조각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나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무너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은 오지 않았다. 삶은 단 한 번도 내게 “여기까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은 것들을 내 앞에 놓아 주었다.
어떤 날에는 귓가에 머문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어떤 날에는 말없이 손을 잡아 준 사람의 체온이었다. 밥을 먹었느냐는 짧은 안부,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 잠깐이라도 편안하게 잔 밤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다 무너진 뒤에는 작은 온기도 크게 느껴졌다. 사랑한다는 말 하나가 지닌 회복의 무게처럼,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설득보다 곁에 남아 주는 다정함일 때가 많았다.
어느 날 거울 속에서 희미하게 웃는 나를 보았다. 활짝 핀 웃음은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오래 보았다. 내 안에 아직 웃을 사람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 보잘것없는 순간들이 나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겨자씨만큼 작은 희망이었다. 눈을 비벼야 보일 만큼 작은 사랑이었다.
회복은 힘차게 일어나는 장면이 아니었다. 약을 챙겨 먹고, 씻고, 밥을 먹고, 잠깐 걷는 일이었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하고 내일 다시 한 가지를 보태는 일이었다. 삶은 그렇게 소리 없이 제 모양을 되찾았다.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은 날도 많았다. 겨우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앉기도 했다.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제자리걸음처럼 보인 시간도 뿌리가 자라는 시간이었다.
나무는 잘린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상처 가장자리에서 새살을 만들고 다시 잎을 밀어 올린다. 가지치기한 자리에서 돋아난 새순은 회복이 상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다시 자라는 일임을 보여 주었다.
무너져도 괜찮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무너짐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넘어졌다는 사실만으로 삶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필요하면 도움을 받아도 된다. 손을 내밀고, 치료를 받고, 하루를 줄여 살아도 된다. 회복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느린 걸음도 멈춘 걸음은 아니다.
지금의 나도 조심스럽게 걷는다. 다시 쓰러질까 두려운 날이 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어둠 속에서도 아주 작은 빛을 찾는 법을 알게 되었다.
무너짐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희망 에세이를 쓰며 나는 거대한 희망을 말하고 싶지 않다. 희망은 언제나 눈부시게 오지 않았다. 겨자씨 한 알처럼 손바닥에 올려놓고도 놓칠 만큼 작게 찾아왔다.
그러나 씨앗은 크기로 나무를 설명하지 않는다. 사랑도 그렇다. 크고 찬란하지 않아도 된다. 한 사람이 오늘을 건너게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작은 사랑 하나로 나는 다시 살아냈다. 오늘도 겨자씨만큼이면 된다. 당신의 손바닥에도 아직 놓치지 않은 희망 한 알이 남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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