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의 간을 가진 남자, 영생을 원하는 인간들의 욕망

우화(羽化)의 집

 

새벽 세 시.

수술대 아래 놓인 플라스틱 대야로 선홍빛 덩어리가 툭 떨어졌다.

“이번 건 300그램입니다.”

마스크 너머로 만수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가위 끝에 묻은 피를 거즈로 닦고, 붉은 덩어리를 보온병에 넣었다.

덜컥.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빈 지하실의 정적을 깼다.

바늘이 살을 뚫고 지나갈 때마다 둔탁한 마찰음이 났다.

서진은 천장에 매달린 60와트 알몸 전구만 바라보았다.

“거 참, 잘라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말이야.”

만수가 거친 실로 절개 부위를 꿰매며 혀를 찼다.

“자네 간은 무슨 밭에 심은 무 같아. 석 달 전에 그렇게 거둬갔는데, 돌아오면 또 성하게 차 있으니. 이 정도면 신이 내린 복인가, 아니면 벌인가?”

복이든 벌이든 상관없었다.

서진의 간은 석 달이면 다시 자랐다.

그리고 그의 간을 먹은 사람들은 살아났다.

만수는 꿰맨 자리에 대충 거즈를 붙이고 봉투 하나를 밀어놓았다.

“이번 건 서울 쪽 병원 재단 이사장이야. 췌장암 말기라는데, 이 한 조각에 강남 아파트 한 채 값 복채를 적립했어. 자네 지분일세.”

“필요 없습니다.”

서진은 수술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에 젖은 셔츠를 몸에 꿰어 입자, 만수가 혀를 차며 봉투를 자기 주머니에 도로 찔러 넣었다.

“또 그러는군. 받을 건 받아야 사람 대접이라도 받지.”

“……다음엔 장소를 바꾸지요.”

“또 장소를 바꿔? 귀찮게 구는군. 아무튼 석 달 뒤에 보세.”

칼을 맡길 수 있는 인간 중 만수는 아직 가장 덜 위험한 자였다.

그래서 서진은 석 달마다 제 발로 이 지하실을 찾아왔다.

서진은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세상은 늘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7년 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옛 동료 교사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준 것이 시작이었다.

동료는 기적처럼 살아났다.

병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스무 해의 세월마저 지워져 있었다.

재생하는 간.

병을 치료하고 젊음까지 되돌리는 간.

소문은 동료의 입에서 의사의 귀로, 의사의 입에서 또 다른 사람의 귀로 흘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진의 존재는 영생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밀한 비밀이 되었다.

그들에게 서진은 이름과 영혼을 가진 인간이 아니었다.

한 번 잘라내도 다시 싹이 트는 움직이는 채소밭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배 속을 드나들며 영생을 빌었다.

정작 서진은 제 몸 하나 편히 누일 곳 없이 떠돌아야 했다.

새벽의 포구로 나오자 희뿌연 안개가 바다와 골목을 삼키고 있었다.

서진은 천천히 걸었다.

잘려 나간 자리가 뜨겁게 꿈틀거렸다.

벌써 새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봐요, 아저씨.”

포구 구석의 포장마차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황색 천막 사이로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흰 머리칼이 듬성듬성한 늙은 주인이 서진을 건너다보았다.

“거 피 냄새 진하게 풍기면서 어디를 그렇게 황망하게 가나. 들어와서 국물이라도 한 모금 축이고 가시오.”

서진은 주춤거렸다.

“……돈이 없습니다.”

“돈 받으려고 부른 거 아니야. 오늘 장사 접으려는데 국물이 남아서 그래.”

주인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았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서 뜨거운 순댓국을 한 대접 퍼냈다.

서진은 천막 안 나무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탁자 위로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뚝배기에는 붉은 다진 양념이 풀어진 국물과 돼지 내장, 큼지막한 간 조각들이 떠 있었다.

서진은 돼지 간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씹을수록 텁텁하고 비릿한 맛이 퍼졌다.

“맛이…… 씁니다.”

“원래 간이 좀 쓰지.”

주인이 냄비를 긁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몸에서 더러운 거 받아내는 놈인데 달겠어.”

“…….”

“먹어. 그래도 먹으면 힘은 나.”

서진은 젓가락을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국물 위로 기름 몇 방울이 천천히 돌았다.

그는 말없이 남은 간 한 조각을 마저 먹었다.

세상은 서진의 간에서 불로와 영생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 놓인 것은 그저 한 끼의 음식이었다.

누군가를 젊게 만들지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도 않는 평범한 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진에게는 그 평범한 간 한 조각이 필요했다.

서진은 국밥을 깨끗이 비웠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복부에서 꿈틀거리던 발열감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잘 먹었습니다.”

“잘 가시오. 몸 멀쩡해지면 다음엔 제값 내고 먹고.”

주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냄비를 씻기 시작했다.

서진은 천막을 나왔다.

피 묻은 붕대 한 조각이 풀려 포구 바닥에 떨어졌다.

벗어놓은 허물처럼 축축한 붕대가 안갯속에 남았다.

길모퉁이에서 검은 승용차의 헤드라이트가 안개를 뚫고 일렁이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서진은 배를 감싸 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세상은 여전히 그의 재생하는 간을 원했다.

누군가는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고, 누군가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서였으며, 누군가는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서진에게 필요한 것은 영생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단 하루였다.

검은 차의 불빛이 안갯속에서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나 서진은 뛰지 않았다.

피 묻은 셔츠를 여미고 걸었다.

아주 보통의 사람이 걷는 속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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