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그 영감이 아니다|나이 들어 다시 찾은 글쓰기의 영감

영감(靈感)과 영감

영감이 되어서야 가슴속 영감이 더는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 들어 어느덧 늙어버린 사내를 세상은 ‘영감’이라 부른다. 그리고 글을 쓰려 할 때 마음속에서 문득 솟아나는 새로운 생각을 우리는 ‘영감(靈感)’이라 부른다.

참 얄궂은 말이다.

젊은 날의 나에게 글쓰기란 샘물 같았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생각이 차올랐고, 그 생각들은 문장이 되어 종이 위를 흘렀다. 이름 모를 풀꽃 한 송이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었고,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도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그때는 세상을 많이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았고, 더 자주 놀랐다.

지금은 다르다.

어두운 방 안, 모니터 불빛을 받으며 앉아 있는 늙은 사내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오래도록 멈춰 있다. 화면은 하얗고 머릿속도 하얗다. 둔해진 감각과 딱딱하게 굳은 생각에서는 좀처럼 글쓰기의 영감이 튀어 오르지 않는다.

얼마 전 오래된 서점에 들렀다.

수많은 책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제목과 목차를 훑었다. 몇 줄 읽지도 않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이런 이야기겠군.’

그러고는 다 안다는 듯 헛헛한 미소를 지으며 책을 도로 내려놓았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인공의 첫 대사 몇 마디만 들어도 복선을 찾고 결말부터 짐작했다. 많이 경험했다는 이유로 세상을 너무 빨리 이해하려 했다.

모든 것을 이미 안다는 오만함과 오래된 경험이 만든 관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자세히 바라보지 않는다.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감동도 찾아오기 어렵다. 그리고 감동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글쓰기의 영감도 좀처럼 자라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 들어서면 낡은 비닐 케이스 특유의 냄새가 났다. 빼곡하게 꽂힌 테이프 사이를 기웃거리며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야기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그 무렵 만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그랬다.

노인이 거대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몇 번이고 바다로 끌려갔다. 노인의 지친 숨소리 사이로 짠 바닷바람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테이프가 늘어져 화면에 치직거리는 노이즈가 섞여 나와도 상관없었다.

그 시절에는 스쳐 지나는 바람 소리조차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다. 생각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차올랐다.

세상의 모든 것이 신비로웠고, 나의 감각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는 놀라는 법부터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경험이 쌓일수록 모르는 것은 줄었지만, 이상하게도 궁금한 것도 함께 줄어들었다.

어느 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밖으로 나섰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데 발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도토리 한 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날은 걸음을 멈췄다. 허리를 굽혀 조그만 갈색 알맹이를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도토리는 차갑고 단단했다.

그런데 그 작은 껍질 속에 언젠가 거대한 참나무 한 그루가 될 시간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한동안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도토리 한 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영감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시들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자세히 바라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굳어버린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어쩌면 글쓰기의 영감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비로운 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의 보잘것없는 것들 앞에 허리를 숙이고, 그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볼 때 비로소 들려오는 나지막한 속삭임인지도 모른다.

길가의 잡초 한 포기,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무심한 표정, 저녁 햇살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오래된 책에서 풍겨 나오는 종이 냄새, 그리고 손바닥 위의 도토리 한 알.

세상은 여전히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내 앞에 펼쳐놓고 있었다.

내가 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야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많이 아는 일이 아니라, 이미 아는 것조차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다시 바라볼 수 있다. 다시 바라보면 작은 것에서도 놀라움을 발견할 수 있다. 놀라움이 생기면 감동이 찾아오고, 감동이 머문 자리에서는 다시 글이 시작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감각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익숙함이 늘어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때로는 세상을 낡게 보이게 한다.

그러니 세상이 낡아 보일 때마다 먼저 내 눈을 의심해 볼 일이다.

나는 이제 세상의 보잘것없는 것들 앞에 다시 허리를 숙이기로 한다.

도토리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던 것처럼 마음도 조금 낮추어 보려 한다. 다 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처음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다시 궁금해하려 한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는다.

여전히 모니터 화면은 하얗다. 손가락도 키보드 위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하지만 이전처럼 조급하거나 절망스럽지는 않다.

영감이 오지 않는다면, 영감이 된 내가 먼저 다가가면 된다.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고, 허리를 조금 숙이고, 오래 바라보면 된다.

오늘도 서재의 창문을 조금 열어둔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작은 바람에 책상 위 종이 한 장이 슬그머니 들썩인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 영감이든, 저 영감이든 다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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