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비싼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비싼 것을 대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식당에 가면 가격부터 보고, 여행을 계획할 때도 숙박비를 먼저 계산한다. 세상에는 좋은 것이 많지만 꼭 비싸야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적당히 깨끗하고 잠자리가 편하면 만족했다.
얼마 전 딸과 사위가 우리 부부를 위해 제주도 효도여행을 준비했다. 목적지는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더 시에나 리조트였다. 출발 전부터 나는 여러 번 물었다.
“거기 비싼 데 아니냐?”
그때마다 딸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그냥 편하게 쉬다 오세요.”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준비가 담겨 있는지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딸과 사위, 그리고 우리 부부는 함께 제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기대와 함께 작은 설렘도 있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머물며 시간을 나누는 특별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더 시에나 리조트는 2023년에 개장한 제주 서귀포의 신축 럭셔리 리조트이다. 유럽의 고전 건축양식을 모티브로 설계되어 넓은 광장과 웅장한 건물이 인상적이다. 일부에서는 7성급 호텔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7성급 제도는 없다. 다만 최고급 시설과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그런 표현이 사용된다.
리조트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높은 기둥과 잘 정돈된 정원, 깨끗한 건물 외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제주에 있으면서도 마치 유럽 어느 도시의 광장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감탄보다 먼저 든 생각은 따로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은 숙박비가 얼마나 할까.’
평생 검소하게 살아온 사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머문 객실은 펜트하우스였다. 넓은 거실과 두 개의 침실, 그리고 여유로운 공간이 갖춰진 객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딸을 바라보았다. 이런 곳을 예약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객실은 새집처럼 깨끗했고 창밖으로는 제주 풍경이 펼쳐졌다. 침대는 편안했고 실내는 조용했다. 누군가는 이런 곳을 당연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숙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객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 한쪽은 편하지 않았다. 내 돈도 아닌데 괜히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날 저녁에는 더 시에나 리조트의 씨푸드 뷔페를 이용했다. 신선한 해산물과 회, 다양한 요리들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대게와 랍스터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모습을 보며 잠시 웃음이 나왔다.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몇 번이고 계산기를 두드렸을 음식들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음식의 값보다 그것을 마련해 준 사람들의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음식 사진을 찍으며 감탄했지만 나는 자꾸만 딸과 사위에게 눈길이 갔다. 음식을 가져다주고, 좋은 자리를 먼저 양보하고, 혹시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것은 비싼 음식이 아니라 자식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그러나 정성은 오래 남는다.
다음 날에는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더 시에나 리조트의 야외 온수풀은 이곳을 대표하는 시설 가운데 하나다. 수영장 끝으로는 제주 바다가 희미하게 보였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려진 오후였다. 물은 따뜻했고 깨끗했다. 몸을 담그자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잠깐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텐데 그날은 오래 머물렀다. 사람도 많지 않았다. 물결이 잔잔하게 번지는 소리만 들렸다. 그 조용함이 좋았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것이 좋았을지 몰라도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평온함을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수영을 마친 뒤에는 카바나에서 쉬었다. 카바나는 천막과 커튼으로 둘러싸인 독립형 휴식 공간이다. 우리는 두 개의 카바나를 이용했다. 치킨과 맥주도 제공되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음식보다 그곳에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편안하게 나누었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깊이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자 리조트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은은한 조명이 건물을 감싸고 로비 라운지에서는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조용히 음악을 감상했고 누군가는 박자를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공연보다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아내는 행복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고, 딸과 사위도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행은 우리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사실은 저 아이들을 위한 여행이기도 하구나.’
부모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자식들의 행복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비싼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여행을 계획한다면 가성비를 따질 것이고, 숙박비가 비싸면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제주 여행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비싼 것이 모두 낭비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돈은 추억이 되고, 어떤 돈은 사랑이 되고, 어떤 돈은 평생 남는 기억이 된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 시에나 리조트의 펜트하우스 구조도 흐릿해질 것이다. 씨푸드 뷔페에서 무엇을 먹었는지도 잊게 될지 모른다. 수영장의 모습도 언젠가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부모를 위해 정성을 들인 딸과 사위의 마음만은 오래 남을 것이다.
비싼 것을 싫어하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비싼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은 것은 가격이 아니라 사람이다.
수영장도 아니고, 씨푸드 뷔페도 아니고, 펜트하우스도 아니다.
카바나에 앉아 웃고 있던 가족들의 얼굴이다.
어쩌면 진짜 럭셔리는 화려한 시설이나 비싼 음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제주도 서귀포의 더 시에나 리조트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숙박 시설보다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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