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 길을 잃으며 비로소 나를 만나는 산행의 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신발끈을 오래 만졌다.

그 사이 산은
젖은 그늘 하나를
내 발등에 먼저 올려놓았다.

마른 흙은 쉽게 부서졌고,
절벽을 버틴 바위의 갈라진 결은
발바닥으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가시덤불을 지나며
몇 번이나 소매를 빼앗겼다.

돌아보니
가시에 걸린 것은 옷자락보다
서두르던 마음이었다.

능선을 따라 걷다
이끼를 피하려던 발끝이
작은 흙더미를 끝내 무너뜨렸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람만
쓰러진 흙 냄새를 오래 뒤집었다.

쉬어 가라는 듯
들꽃 몇 송이가 바짓단에 매달렸지만,

나는 쉬지 않았고,
꽃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잠시 멈춘 것은
가슴속에서 거칠게 부딪히는 숨과
나무 사이를 건너는 새소리뿐이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길은 더 좁아지고,

발자국은
앞으로 난 것이 아니라
뒤에서 나를 밀어오는 것 같았다.

돌 하나를 비켜섰다고 생각했는데
발등에는 어느새 흙이 묻어 있었다.

산은 끝내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만 내려오는 길에서도
낯선 발자국 하나가
내 것처럼 오래 따라왔다.

 

 

*관련글 보기

나는 스마트폰이다: 디지털 소통 속 감정과 관계를 담은 수필

“불꽃 속에서 익어가는 삶, 삼겹살 한 점에 담긴 이야기”

“비 내린 고속도로, 붉은 철쭉 뒤에 숨겨진 비둘기의 마지막 눈빛”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