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기 위해 먹을까.
아니면 먹기 위해 살까.
배가 부르면 첫 번째가 맞고, 배가 고프면 두 번째가 옳다. 철학도 허기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유튜브와 텔레비전에는 먹는 장면이 넘친다. 누군가는 산처럼 쌓인 음식을 먹고, 누군가는 한 숟가락의 맛을 설명하는 데 십 분을 쓴다. 먹는 일은 끼니를 넘어 구경거리가 되었고, 위로가 되었으며, 때로는 삶의 목표처럼 보인다.
그래도 음식의 본래 자리는 화면이 아니라 사람 사이일 것이다. 한 그릇을 가운데 놓고 서로의 하루를 묻는 순간, 밥은 관계가 된다. 된장찌개 한 그릇이 불러낸 인생의 식탁도 결국 음식보다 함께 앉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이 모이거나 동료들과 회식을 하거나 캠핑을 떠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삼겹살.
불판 위에 고기가 닿는 순간 ‘치익’ 소리가 난다. 기름이 튀고 연기가 오르고, 조금 전까지 점잖던 사람들의 눈빛이 바빠진다. 고기를 뒤집는 집게에는 잠깐 권력이 생긴다. 잘 구운 한 점을 누구에게 먼저 줄 것인가. 그 작은 선택에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상추 위에 삼겹살을 얹는다. 파무침과 마늘, 쌈장을 조금 보탠다. 입을 크게 벌리면 체면은 작아지고 행복은 커진다. 짭짤한 기름맛과 채소의 향이 한입에서 어울린다.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도 잠시 불판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삼겹살은 혼자 먹을 때보다 여럿이 먹을 때 제맛이다. 누군가는 굽고, 누군가는 자르고, 누군가는 빈 접시를 채운다. 불 앞에서는 직급도 나이도 조금 낮아진다. 모두가 고기 익기를 기다리는 평등한 사람이 된다.
집을 떠나야 집의 온기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낯선 야외에서 나누는 한 끼는 평범한 사람을 귀하게 만든다. 차박을 떠나야 집이 보일 때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다. 좋은 자리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함께 앉은 사람이 편안한 곳인지 모른다.
그러나 고소한 냄새가 모든 걱정을 태워 주지는 않는다. 삼겹살과 돼지기름을 건강식처럼 단정할 수는 없다. 돼지고기는 단백질과 여러 영양소를 주지만, 지방이 많은 부위에는 포화지방도 많다. 중요한 것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는 일이 아니라 먹는 양과 빈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건강은 한 점을 먹었다고 무너지지도 않고, 한 점을 참았다고 완성되지도 않는다. 채소를 곁들이고, 너무 태우지 않고, 술과 소금을 줄이며, 적당한 자리에서 젓가락을 놓는 편이 낫다. 맛있게 먹되 과장된 건강 정보를 핑계로 과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삼겹살을 오래 즐기는 방법이다.
알면서도 우리는 가끔 선을 넘는다. 다이어트 뒤에 치킨을 먹고 다시 걷기로 한 사람처럼, 삶은 완벽한 절제보다 돌아올 줄 아는 균형에 가깝다. 10kg을 감량한 뒤 치킨을 먹은 날의 깨달음처럼 한 끼의 일탈보다 다음 걸음이 더 중요하다.
굽다가 탄 고기처럼 삶도 불쑥 어긋난다. 누군가의 젓가락이 내 몫을 집어 가듯 뜻밖의 서운함도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새 고기를 올리고, 잔을 채우고, 다시 웃는다. 불판은 지나간 한 점을 오래 원망하지 않는다.
삼겹살 한 점에는 “오늘도 잘 버텼다”는 서툰 위로가 들어 있다. 대단한 성공을 축하하지 않아도 된다. 무사히 하루를 건넌 사람끼리 마주 앉아 잘 익은 한 점을 건네는 것으로 충분하다.
불꽃은 고기를 익히지만, 기다림은 사람을 익힌다. 너무 서두르면 겉만 타고, 너무 망설이면 속까지 식는다. 삶에도 뒤집어야 할 때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오늘 내 삶은 어느 만큼 익었을까.
아직 붉은 속살이 남았다면 조급해하지 말 일이다. 우리는 완성된 채 태어난 음식이 아니다. 불꽃과 시간을 견디며 조금씩 제맛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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