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혀는 다섯 가지 맛을 기억한다.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그리고 쓴맛.
그중에서 사람들은 단맛을 가장 쉽게 사랑한다.
쓴맛은 불편하고 낯설다.
몸에 좋다는 걸 알아도, 입으로 들이는 건 쉽지 않다.
나도 그랬다.
어릴 적 설탕은 귀한 보물이었다.
찬장에서 몰래 꺼낸 당원,
입안 가득 퍼지던 알사탕 하나가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청년이 된 뒤엔 봉지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설탕과 프림이 듬뿍 섞인 달콤한 커피.
한 손엔 담배, 다른 손엔 종이컵.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커피 자판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시절.
나는 아마 커피보다는
그 안에 녹아 있는 단맛을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가 건넨 아메리카노 한 잔.
첫 모금은 고통이었다.
쓴맛은 거칠고, 낯설고, 말이 없었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고, 다시는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며칠 뒤 그 맛이 떠올랐다.
다시 마셨고, 또 찡그렸고,
그렇게 몇 번의 반복 끝에
그 쓰디쓴 커피는 내 일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은 봉지커피도, 담배도 멀리했다.
이젠 오히려 그 쓴 커피가
내 하루를 다잡아주는 존재가 되었다.
단맛은 입안에서 반짝이고 사라지지만,
쓴맛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 말한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았다”고.
정말 그렇다.
단맛은 젊고 빠르다.
쓴맛은 느리고 오래간다.
나이가 들며 고기보다 나물을 찾게 되는 것처럼,
화려한 맛보다 절제된 쓴맛을 찾게 되었다.
쓴 커피 한 잔은
입보다는 마음을 깨우고,
단맛이 가르쳐주지 못했던
인생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아직도 가끔 단맛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진짜 위로가 필요할 땐
말없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인생이 내게 남긴 건 결국
그 쓴맛뿐이었고,
그 쓴맛이야말로
내가 끝끝내 놓지 못한 진짜 맛이었다.
'감성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술문화, 왜 사라지고 있을까?" (4) | 2025.06.18 |
---|---|
“문은 마음 안에 있었다 – 서산 개심사에서” (0) | 2025.06.17 |
“봉숭아 꽃잎, 그리고 상처 대신 남긴 색깔” (0) | 2025.06.15 |
신문지 벽과 연탄불, 고바우가 살아있는 식당 (2) | 2025.06.14 |
“자연 속에서 놀던 시절, 천렵과 친구들의 이야기” (6) | 2025.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