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와도 마음은 더 이상 뜨겁지 않다.
햇살은 여전하지만, 가슴 속 열기는 사라졌다.
그 뜨거움은 아마도, 천렵과 함께 떠난 것 같다.
우리 동네에는 개울이 있었다.
작고 맑은 물길이었지만, 그 안에 세계가 있었다.
친구들과 눈빛만 마주치면 “천렵 가자”는 말이 나왔다.
족대가 없으면 손으로 잡았다.
붕어, 미꾸라지, 빠가사리.
물은 차가웠고, 우리는 뜨거웠다.
개울가에서 바로 불을 지폈다.
작은 솥에 고추장, 국수, 들에서 딴 채소.
그 국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솥이 끓는 동안 우리는 웃었다.
땀에 젖고 흙투성이가 돼도
서로의 얼굴은 환했다.
그 맛은 혀보다 마음에 남았다.
소금보다 웃음이 간을 맞췄고,
스프보다 추억이 풍미를 더했다.
얼마 전 아파트 여름 축제에서
고무 수조에 물을 채우고,
아이들이 작은 채로 물고기를 잡는 체험 부스를 보았다.
돈을 내고 짧은 시간 안에 몇 마리 잡는 놀이였지만,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물속을 들여다봤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내 마음 어딘가에서 파문이 일었다.
'아, 저게 바로 우리가 하던 천렵이었지.'
물고기를 잡는 그 짧은 순간에
아이들은 자연을 느끼고, 살아있는 것을 대하며,
나처럼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렀다.
개울은 사라지고, 친구들은 떠났다.
누구도 “천렵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워터파크에서 놀고,
물고기는 스마트폰 화면 속에 있다.
우리는 점점 자연에서 멀어졌다.
가끔 유튜브로 천렵 영상을 본다.
모니터 속 족대질을 보며,
손끝이 간질거린다.
왜일까.
내 안에 아직도
물장구 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일까?
천렵은 단순한 여름놀이가 아니었다.
그건 함께였고, 자연과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우리만의 계절이었다.
언젠가 다시 개울가에 서게 된다면
물속에 발을 담그고
조용히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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