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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신문지 벽과 연탄불, 고바우가 살아있는 식당

by 선비천사 2025. 6. 14.

 

세상엔 사라져도 되는 것이 있고,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고바우 영감은 후자다.

 

신문 모서리에 붙어 있던 네 컷 만화.
유쾌하지만 날카롭고, 익살스럽지만 속이 깊었다.
그 그림 속에서 어린 나는 세상을 엿보았고, 웃음 속에서 어른들의 현실을 배웠다.

 

그 시절, 신문은 TV였고 교과서였으며
고기 포장지이자, 벽지였고, 때로는 화장실 휴지였다.
고바우는 늘 우리 삶의 어딘가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골목에서 익숙한 이름의 간판을 봤다.
‘고바우 덩어리 생고기’

 

잊고 지낸 친구가 불쑥 나타난 듯한 느낌.
오래 지나치기만 했던 그 식당,
가족과 함께 처음 문을 열었다.

 

안은 낡았다.
신문지가 벽을 뒤덮고, 연탄불이 피어올랐다.
어두운 듯하지만 따뜻한 불빛.
기억 하나가 가슴에서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손이 많이 간다.
방심하면 꺼지고, 정성 없이는 불이 붙지 않는다.
그 불 위에서 고기를 굽는 주인의 손놀림을 보며 느꼈다.
이 집은 음식을 굽는 게 아니라 시간을 굽고 있구나.

 

20년.
같은 자리, 같은 불, 같은 방식.
불편한 연탄을 고집하며 매일같이 반복된 그 손길.

효율보다 오래가는 건 성실한 반복이다.

 

고기를 한 점 씹는다.

불향, 짠맛, 텁텁한 연탄 향.
그 맛은 내 기억 속 풍경을 불러냈다.

 

겨울, 연탄난로, 고바우 영감의 만화 한 장면.

이 집의 주인은,
어쩌면 진짜 ‘고바우 영감’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하루를 이어가는 사람.

그는 만화 대신 음식으로, 풍자 대신 정성으로
오늘을 견디는 법을 보여준다.

 

삶이란 결국 버티는 일이다.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

 

그 연탄불을 매일같이 지켜내는 것.
그건 단지 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도를 지켜내는 일이다.

 

밖으로 나오며 간판을 다시 봤다.
‘고바우’라는 세 글자.
오늘따라 유난히 묵직하다.

 

그 안엔 한 사람, 한 시대,
그리고 내 기억이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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