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생각이 유연하다고 믿어왔다.
젊은이들을 존중했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애썼으며,
내 기준이 그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너는 안 늙는다”고 말하곤 했다.
어느 겨울날, 교실에서 수업 중 아이들과
‘추억’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순간이었다.
“나는 어릴 때 달력을 찢어 연을 만들었단다.
갈퀴살 하나하나 깎아서….”
내 말에 한 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우린 드론 날려요.”
말은 짧았지만, 그 표정은 길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췄고,
창밖의 바람만 바라봤다.
그 순간, 내 기억 속의 연이
잠시 흔들리며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며칠 뒤, 딸과 함께 길을 걷다
젊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마주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요즘은 여자들도 담배를 피우는구나.”
딸은 내 눈을 가만히 보며 물었다.
“아빠는 왜 여자한테만 놀라?”
그 말에 나는 말을 잃었다.
그 침묵은 길었고, 생각보다 묵직했다.
그날 밤,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교 시절, 내 앞에서
긴 머리를 묶고 담배를 꺼내 들던 동기.
당시 나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다르게 느껴졌을까.
시간이 바뀌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바뀐 걸까?
나는 이제 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단지
세월이 흐르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는
기준이라는 이름의 벽을 하나씩 더 세운다.
젊음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그 마음조차,
결국은 과거에 기대어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연을 좋아한다.
종이 결을 따라 흐르는 바람,
손끝으로 느끼는 하늘의 진동.
하지만 이제는, 그 연이
가끔은 실없이 날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드론처럼 날렵하지 않아도,
엉성한 꼬리를 달고도
하늘을 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늙는다.
문제는 몸보다
생각이 먼저 굳는다는 데 있다.
나는 이제 내 생각을 늙히지 않기 위해
질문하려 한다.
“요즘은 어떤데?”
그 질문은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딸이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아빠는 나이만 먹었지,
마음은 여전히 연처럼 가볍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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