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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공중화장실을 보면 사회가 보인다”

by 선비천사 2025. 7. 18.

 

“화장실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이 단순한 말은 나이 들어 갈수록 자주 떠오른다.
그곳은 인간이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이자, 가장 배려받고 싶은 순간이 머무는 공간이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삐걱이는 나무 문이 달린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시멘트 발 디딤판,
그 밑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과 냄새가 아득하게 퍼져 있었다.

 

아이들 사이엔 ‘똥통에 빠진 놈’이라는 말이 있었다.
실제로 누군가 빠졌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 하나로 한 학기 내내 놀림을 받았고,
그 웃음 뒤에는 누구나 빠질 수도 있다는 은근한 공포와 공감이 숨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매번 화장실을 갈 때면
호흡을 멈추고, 발끝에 힘을 주고, 어두운 구멍을 피하듯 바라보며
단 1초라도 빨리 그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때의 불편과 불안이
어릴 적 삶의 냄새이자, 하나의 감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달라졌다.
요즘 아이들은 비데가 없는 화장실은 불편하단다.
좌석이 따뜻해야 하고, 물은 자동으로 내려가야 하며,
향기와 음악, 심지어 손 안의 스마트폰 충전까지 요구한다.

 

화장실이 단순한 ‘처리 공간’이 아닌,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안락한 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젠가 도쿄 시내를 걷다 문득 눈에 들어온 공공 화장실이 있었다.
‘THE TOKYO TOILET’이라는 프로젝트로,
반투명한 유리벽은 사람이 들어서면 자동으로 불투명해지고,
내부는 마치 갤러리처럼 조용하고 정갈했다.

 

그곳에 앉아 문득 생각했다.
너무 완벽한 공간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잃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작동하는 그 편리함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일조차 쉬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한국도 이제 많이 변했다.
서울의 한 공공화장실에서 QR코드로 민원을 넣고,
자동 살균 기능이 작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 불편함을 느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 화장실 앞은 줄이 길다.
남성은 몇 초면 끝나는 일이라도,
여성은 아이를 챙기고, 가방을 들고, 옷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누군가는 이것을 ‘사용 속도의 차이’라 말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공간의 권리 문제로 다가온다.

 

다행히도 요즘은 아이를 위한 기저귀 교환대,
넓은 부스, 여성 안심 화장실이 점차 늘고 있다.
사람의 다양함을 이해하고, 그만큼의 공간을 내어주는 사회,
그런 사회는 분명 더 따뜻하다.


💭 마무리하며

화장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그 작은 공간은,
사실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타인을, 사회를 배려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옛날 똥통에 빠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던 나는
지금,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자동 화장실 안에서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사람 사는 냄새와 따뜻함을 되새긴다.

 

기계가 아무리 섬세해져도,
화장실은 결국 사람의 흔적이 머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그 작고 조용한 방에서
이 세상이 얼마나 자랐는지를 확인하고,
조용히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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