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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AI에게 배우는 인간, 바둑판 위의 공존

by 선비천사 2025. 7. 19.

 

어릴 적,
아버지와 나는 말수가 적은 사이였다.
하지만 주말이면 바둑판 앞에 마주 앉았다.
침묵 속에 돌을 놓고,
돌이 모이면 어느새 대화가 시작됐다.
말 대신 호흡으로, 손끝으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다.

 

지금은 그 바둑판만이 남아 있다.
아버지는 진즉에 세상을 떠나셨고,
나는 가끔 그 바둑판을 꺼내놓는다.
낡고 반들거리는 바둑돌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손길을, 그의 숨결을 떠올린다.

 

2016년 봄,
세상이 다시 바둑을 주목하던 날이 있었다.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

 

그날 나는 혼자 TV 앞에 앉았다.
아버지가 옆에 있었다면
“그래도 사람이 이기겠지.
바둑은 사람이 두는 거잖아.”
하고 웃었을까.

 

하지만 결과는
그 기대를 조용히 무너뜨렸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다.
단 하나의 판을 제외하고.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제 바둑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돌 하나가 툭 부서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바둑을 내려놓았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언가 본질적인 것이
기계에게 밀렸다는 상실감이었다.
마치 아버지와의 시간까지 함께 끝나버린 듯했다.

 

하지만 몇 달 뒤,
우연히 본 영상 하나가 내 생각을 흔들었다.
젊은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의 수를 연구하고 있었다.

 

“이 수는 사람이라면 절대 생각 못 해요.”
그들은 열정적으로,
때론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며
AI의 수를 따라 배우고 있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고,
조금 감탄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존재에게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누구나 손안의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눈다.
초등학생도 챗GPT에게 질문하고,
직장인은 AI에게 아이디어를 구한다.

 

AI는 더 빠르고, 더 정확해졌다.
이세돌과 겨루던 시절의 AI는
이제 수천 배 똑똑해졌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람의 표정까지 이해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 앞에서
다시 묻고 있다.

 

“이세돌의 마지막 돌은 아직 유효한가?”
아니면 이제는 우리가
그 위에 또 하나의 돌을
올릴 차례인가?

 

처음엔 두려웠다.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것,
그리고 그 기계가 스스로 더 나아지는 것.
그러나 이제는 다르게 보인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강한 능력 —
배움과 수용.

 

패배 앞에서도 고개를 들고,
무릎 꿇고라도 배우겠다는 태도.
그건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

 

AI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계산하고 예측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해하고, 느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단 한 판 이긴 그날,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은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문을 남긴 것이었다.

 

그 한 판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의 AI 앞에서도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무엇이 인간다움인가?

 

이 질문을 품은 채
우리는 기계와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
기술을 따르고, 감시하고, 제어하며,
동시에 그 너머의 의미를 스스로 묻고 지켜야 한다.

 

요즘,
나는 가끔 그 오래된 바둑판을 꺼낸다.
혼자서 두 점을 번갈아 놓으며
아버지와 나 사이의 시간들을 다시 느낀다.

 

서툴고 느리지만,

그 돌에는
아무 기계도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숨결, 망설임, 후회, 그리고 따뜻함.

 

기계는 답을 내지만,
무엇이 질문이어야 하는지는
인간만이 안다.

 

이세돌이 떠난 자리,
그의 마지막 돌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놓여 있다.

 

그것이 패배든 승리든,
인간은 그 위에 또 다른 돌을 놓을 것이다.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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