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꽤 순진한 야망을 품고 살았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연예인이 되어 세상을 휘어잡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눈총 받는 것도 싫고, 뭔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눈만 껌뻑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감정 레이더를 켜고 사람들의 눈빛, 톤, 발끝의 방향까지 읽었다.
"쟤 기분 좀 안 좋은가?" 싶으면 초코파이 하나 내밀고,
"괜찮아?"라는 말은 하루 평균 다섯 번은 했다.
혼자서 인간 관계부장이라도 된 듯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회의 중, 누가 툭 던지듯 말했다.
“적당히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다 맞춰주면 바보 돼요~”
나는 그 말에 진심으로 반응했다.
“공감 없는 사회가 더 무섭지 않나요?”
그 순간 회의실은 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커피를 천천히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진심은 항상 환영받지는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유난 떠는 사람’이 되었고,
내 꿈이었던 ‘전인류와의 평화 협정’은 아무도 사인하지 않은 채, 폐기되었다.
한참을 상처받고, 서운해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를 수도 없이 되뇌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하려 했던 건, 사실상 타인의 감정에 무단 침입하는 일이었다는 걸.
친구가 슬퍼하면 내가 더 먼저 눈물짓고,
누군가 아프면 내 기운부터 빠져버리고,
남의 감정에 너무 깊이 빠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아니게 되었다.
공감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선 넘은 공감은 자기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존중하지 못한다.
이제는 좀 달라졌다.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먼저 다가가기 전에 묻는다.
“괜찮아?”가 아니라,
“지금 나랑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야?”
남이 기쁘면 함께 웃고,
내 기쁨엔 박수를 더 크게 친다.
예전에는 혼자 울다가 그걸 숨겼다면,
지금은 “나 좀 슬퍼”라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 꿈은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그 ‘좋음’ 안에 나 자신도 포함된다.
좋은 사람은 모두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이해하려 애쓰되, 자신부터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혹시 당신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나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어서, 정작 자기 자신과 멀어진 적.
그렇다면 우리 둘은, 참 사람 같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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