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햇살은 이글거리고, 바람은 숨을 죽인 채 나뭇잎 하나 흔들지 않았다.
나는 벌겋게 달궈진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놀다, 지쳐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더워 죽겠지? 등 좀 식히자!”
잠시 후, 우물에서 퍼온 찬물이 담긴 양동이가 등장했다.
나는 도망칠 타이밍을 놓쳤고, 그대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찰싹’.
등허리를 타고 내려온 그 한 바가지.
숨이 멎을 듯한 그 찬물은, 단지 몸을 식히는 것을 넘어
뇌 속까지 번쩍 깨우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깨어난다, 살아난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것이 내 인생 첫 번째 '찬물샤워'였다.
이름도 없고 과학도 없던 시절,
할머니는 그걸 그냥 “등목”이라 불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시원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물은 피곤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처진 어깨를 펴게 했다.
논두렁에서 흘린 땀, 밭에서 받은 햇빛,
그것들이 찬물에 씻기며 다시 기운이 돌아왔다.
피부는 얼얼했지만, 마음은 한결 맑아졌다.
할머니는 “등에 땀 식혀야 감기 안 들어”라고 하셨지만,
그건 단순한 생활의 지혜가 아니었다.
지금 와서야 알게 된다.
그것은 진짜 건강이었다.
요즘도 뉴스나 책에서
찬물샤워가 면역력을 높이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도파민이 분비되고,
몸이 스스로를 깨우는 자극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학적 설명보다,
어릴 적 마당 한가운데서 등에 느낀
한 바가지 찬물의 감각이 더 믿음직스럽다.
그건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었다.
내 살갗으로 배운 진리였다.
지금의 아파트 욕실에도 찬물은 흐른다.
수도꼭지만 틀면 나온다.
하지만 그 물은
시골 우물물이나 계곡물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나는 가끔 일부러
차가운 물줄기에 나를 맡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까진 늘 망설여지지만,
한 번 용기 내어 찬물 속에 들어가면
금세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무거웠던 하루의 마음이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다.
찬물은 그런 존재다.
사람을 얼게도 하고, 살게도 하고, 깨우게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여름을 통째로 기억하게도 한다.
문득 오늘 아침,
샤워기에서 쏟아진 찬물 속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얘야, 시원하지?
살아 있는 거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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