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 말라죽은 화분 하나가 있다.
물도 못 먹고, 볕도 못 받았을 그 화분은
한때는 꽃을 피우던 화분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다.
한때는 꽃을 피우던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말에 쉽게 웃고,
길가에 핀 민들레를 보고 괜히 기분 좋아하던 사람.
그런데 요즘 나는,
물도 못 먹고, 볕도 못 받고 있었다.
누구 탓일까?
직장? 인간관계? 바쁜 일정?
그것보다 더 오래 나를 갉아먹은 건,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내 습관이었다.
남들 챙기느라 지쳐 돌아온 밤,
전자레인지에 돌린 밥을 허겁지겁 먹으며
나는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괜찮았어?”, “힘들진 않았어?”
그 당연한 안부 하나 없이,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 화분을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다 멈췄다.
줄기를 만져보니 아직 단단했다.
잎은 다 떨어졌지만,
줄기는 꺾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났다.
그게 나였다.
줄기 하나로 버티고 있는 나.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능력 있는 척.
하지만 사실은,
물 한 모금 감정 한 줄도 삼키지 못한 채
겨우겨우 서 있는 나.
그날부터 매일 아침, 나는 그 화분에 물을 줬다.
햇빛 잘 드는 창가로 옮기고,
흙을 새로 갈아주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미안해. 그동안 네가 마른 줄도 몰랐어.”
그리고 문득 알았다.
그 말은 화분에게 한 게 아니라,
나에게 한 거였다는 걸.
자기 돌봄이란 결국,
꽃을 다시 피우는 게 아니다.
줄기를 알아보는 일이다.
다 지고, 다 져도
그 꺾이지 않은 하나를 발견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요즘 나는 가끔 그 화분 옆에 앉는다.
창밖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도 잘 버텼어. 너 아직 줄기 살아 있더라.”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가장 조용한 안부.
그게, 나를 돌보는 첫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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