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성수필

“죽지 않는 인간, 기술은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by 선비천사 2025. 7. 12.

 

‘오래 사는 것’은 곧 ‘잘 사는 것’일까.
어릴 적 나는 백세를 넘긴 할머니의 주름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긴 세월을 살아온 얼굴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주름은 삶의 무게라기보다 기다림처럼 느껴졌다. 마치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존재처럼.

 

지금 우리는 그 기다림에 과학이라는 이름의 답을 갖고 다가간다. 20세기 초 50세에 불과하던 기대수명은 이제 80세를 넘어섰고, 어떤 과학자들은 120세, 심지어 ‘무한 수명’의 가능성까지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는 죽지 않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노화를 다루는 방식을 달리 배우고 있는 걸까.

 

하버드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박사는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하며, NAD⁺ 같은 노화 억제 물질을 활용해 세포 기능을 젊게 유지하는 연구를 이끌고 있다.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가 발견한 iPS 세포는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릴 수 있게 하며,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는 인간이 스스로의 유전자를 설계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이제는 단식 모방 식단, 메트포르민, 라파마이신 등 약물로 생체시계를 조절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특히 미국의 ‘TAME 프로젝트’는 메트포르민을 통해 노화의 본질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놀라운 발전 속에서도,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수명을 늘릴 준비는 되었지만, 그 시간을 살아갈 준비는 되었을까?

 

노화를 막는 기술이 누구에게나 공평할 리 없다. 비용은 높고, 접근성은 낮으며, 그 격차는 삶의 질의 차이로 이어진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삶은 불균형해지는 사회. 과연 이것이 우리가 원하던 미래인가.

 

기술은 시간을 연장시킬 수는 있어도,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수명 연장의 논의는 결국 삶의 철학으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싶은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이 질문이 없다면, 백 년을 살아도 그것은 단순한 연장의 반복일 뿐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단순한 ‘장수의 시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묻는 시기가 될 것이다. 노화가 멈추는 날이 오더라도, 생의 의미는 끊임없이 되묻고 다시 써야 할 것이다. 삶은 숫자가 아니라, 깊이와 방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삶도 그 끝을 향할 것이다.
그날, 나는 묻고 싶다.
“나는 오래 살았는가?”보다,
“나는 진심으로 살았는가?”라고.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