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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잘 살아온 줄 알았다… 그런데 거울이 말을 걸었다”

by 선비천사 2025. 7. 10.

 

거울 앞에서 머리를 정리하다가
손이 멈췄다. 눈가에 붉게 부은 자국이 보였다.
잠을 설친 탓이었다.

 

그제야 어젯밤 회식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넌 너무 감정을 숨겨. 그래서 좀 피곤해.”

말한 사람은 아무 악의 없이 던졌을 테고,
분위기도 가볍게 웃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 말이 집에 와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샤워기 소리에도,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에도
자꾸 그 말이 섞여 들렸다.

 

그렇게 나는
말 한 마디에 하루가 금이 갔다.

거울 속 나는 익숙했다.
일할 때 쓰는 정돈된 표정,
어색하지 않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눈꼬리,
피곤해도 버텨낼 수 있는 턱선.

 

그런데 그날은 그 익숙한 얼굴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속이 빈 채로 껍질만 남은 사람.

 

거울이 나를 비춘 게 아니라,
내가 거울에 나를 흉내 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보통
**“마음이 부서졌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진짜 마음은
그렇게 요란하게 부서지지 않는다.

 

그보다 더 조용하게,
티 나지 않게 금이 간다.

 

남들 눈엔 멀쩡해 보여도
스스로만 알고 있는 금.

 

잘 웃고, 잘 일하고,
인사도 잘하면서도
속으로는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중.

 

그리고 그걸 아무도 모르니까
더 고립된 기분이 된다.

나는 한 번도
내 감정을 잘 표현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괜찮아", "아무 일 아냐"
를 입에 달고 살았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대신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거나
퇴근길에 이어폰 볼륨을 높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뭘 느끼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 한구석에
찌꺼기처럼 쌓여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밤,
나는 처음으로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눈을 마주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눈을 피했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감정을 꺼낸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내 마음을 알아채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상처가 난 곳을 그대로 둔다고
낫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요즘 나는
거울 앞에서 눈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눈 밑 그늘도, 닫힌 입술도
그대로 마주한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속삭인다.

 

“그 말에 상처받은 거, 괜찮아.
너답게 느낀 거니까.”


이제는 그 말을 버리지 않는다.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것도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이라는 걸,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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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돌봄 글) https://sunbicheonsa.tistory.com/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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