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1960년대 초반,
그 당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50세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나는 이미 생의 끝을 지나온 셈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도 꽤 건강하게.
그래서일까,
아침마다 눈을 뜰 때면
‘아직도 살아 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하루하루가 덤 같고,
고맙다.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1991년, 나는 사회 교사가 되었다.
갓 임용된 새내기 교사로 교단에 섰을 때,
칠판은 초록색 페인트로 정돈돼 있었고
난방은 연탄이 아닌 온수 보일러였다.
어릴 적 호롱불 아래서 책을 읽던 세대였지만,
교사로 나선 순간부터는
형광등 아래 전기로 움직이는 세상 속에 들어섰다.
기술은 이미 조용히
학교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만큼은
시대를 타지 않았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속에는
여전히 존중과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의 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소박했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 그 이상이었다.
나는 사회 과목을 가르쳤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의 표정을 읽는 데 썼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는 아이,
매일 똑같은 도시락을 먹는 아이.
교실에는 수많은 사연이 자리했고,
그 아이들을 품으며
나는 점점 교사로서 ‘익어’ 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교실 풍경도 달라졌다.
칠판은 전자칠판으로 바뀌었고,
필기도구 대신 태블릿을 드는 아이들이 등장했다.
가르치는 방식도,
소통하는 언어도 바뀌었지만
아이들의 ‘마음’만은 여전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아이들의 외로움과 설렘,
불안과 희망은
여전히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아이들 옆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했다.
작년, 멕시코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택시를 탔는데,
창문은 손으로 돌려야 올릴 수 있었고,
에어컨도 없었다.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스칠 때,
문득 90년대 초
한국의 어느 골목이 떠올랐다.
아날로그 냄새가 배어 있던 그 시절.
그 택시 안에서 나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실감했다.
짧은 시간에 얼마나 멀리 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여정을 함께 했는지를 새삼 느꼈다.
나는 엘빈 토플러가 말한
‘물결’ 속에서 교사로 살아왔다.
제1의 물결 농업사회에서 태어나,
제2의 물결 산업사회에서 사회에 나섰고,
제3의 물결 정보화시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제
제4의 물결, 인공지능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새로운 기술과 변화가 때론 두렵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인간은 언제나 중심을 찾아왔고,
교육은 그 중심을 지키는 등불이었다.
지금 나는 교단에서 물러났지만,
배움은 여전히 나의 삶이다.
세상의 흐름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지금,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작았던 감정들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빨리 끝나버릴까 아쉽다.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느끼고 싶다.
내게 세상은 여전히 궁금하고,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만한 일이다.
이제는 칠판도,
아이들도,
시간도 나와 멀어졌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격동의 시대를 건너왔고,
여전히 파도를 바라보며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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