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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가시밭길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by 선비천사 2025. 7. 3.

 

등산을 자주 하게 된다.
좋아서라기보단 그 길이 나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호흡은 거칠고, 다리는 무겁다.
돌부리 하나에도 중심을 잃는다.
가끔은 가시덤불이 앞을 막는다.

 

그 모든 순간이 낯설지 않다.
교사로 사는 일과 꼭 닮았다.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민우.
눈을 피하며 말했다.
“선생님, 어제는 좀... 너무했어요.”

 

무슨 말이었을까?
기억을 더듬다 떠올랐다.
"너는 왜 항상 그래?"

 

지적하려던 말이
비수처럼 꽂혔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생채기를 내는 가시밭길이 부드럽게 느껴질까?"

 

나는 여전히 배운다.
말의 무게, 침묵의 의미,

눈빛 하나의 온도까지.

 

혼자 남은 교실.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고

바닥엔 흘린 연필이 구른다.

 

그 고요 속에서
옆 반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이거 제가 만든 건데 보실래요?”
“우와, 이건 진짜 네가 만든 거야?”

 

그 평범한 대화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만 걷는 길이 아니라는 위안.

 

다른 짐을 지고도 함께 걷는 사람들.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발밑이다.

 

“어린 새싹을 밟지 말아야지.”

 

작년 봄, 창가에 앉아

조용히 그림을 그리던 서연이.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서연이는 여전히 연필을 쥐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꽃잎을, 연한 회색으로 배경을 칠하는 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말했다.
“서연아, 수업 시간엔 집중하자.”

 

서연이는 대답 대신,
자신의 그림을 천천히 덮었다.

 

그림의 윗부분은 아직 마르지 않아
덮은 종이에 물감이 번졌다.

 

그날 이후, 서연이 책상 위에서
색연필이 사라졌다.
창밖만 바라보던 그 눈빛도, 함께.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의 ‘숨 쉴 틈’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가끔은 규칙보다
숨통이 먼저여야 한다는 걸,
서연이의 침묵이 가르쳐주었다.

 

교사의 길은 오르막이다.
그러나 예상 못한 내리막도 있다.

 

하루 종일 힘든 날,
지우가 쪽지를 건넸다.

‘오늘 선생님도 화났었죠?
근데 저는요,
선생님이 있어 다행이에요.’

 

그 한 문장에
나는 다시 걷게 된다.

 

"얼마나 침묵해야,
그 숱한 대화가 가능하며…"

 

말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가만히, 오래 머물면
아이도 문을 연다.

교사는 먼저 문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얼마나 관심을 가져야,
꽃길을 지나갈까?"

 

무심한 척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도 조심히 걷는다.

아이의 작고 여린 마음들이
밟히지 않도록,
피어나도록.

 

길 끝에서 나는 묻는다.
우리가 걷는 이 길, 꽃길일까?

 

아니다.
이 길을 꽃길로 만드는 건, 함께 걷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도
다시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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