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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찔레순, 싱아, 칡… 그 시절 산과 들이 주던 건강 간식”

by 선비천사 2025. 6. 30.

 

1960년대.
그 시절 아이들의 간식은 바람과 흙이 먼저 맛보던 것들이었다.
비닐봉지 대신 손바닥에 담았고, 조미료 대신 햇살과 바람이 맛을 내주었다.

 

“천 원어치 주세요”라는 말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
대신 우리는, 말없이 눈을 땅으로 내리고 손을 들판으로 뻗었다.
배고픔은 때론 놀이였고, 때론 모험이었으며, 늘 자연을 향한 본능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은 늘 조금씩 길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싱아 있다!” 외치면, 아이들 여럿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초록빛 줄기를 꺾고 껍질을 벗겨 입에 넣는다.
톡—.
아삭이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시큼함.
눈을 찡그리며 씹다 보면 침이 고이고, 몸속까지 시원해졌다.

 

너무 많이 먹으면 입안이 헐었지만, 그건 배불리 먹었다는 증표였다.
지금도 문득 혓바닥 아래에 그 맛이 어른거린다.

 

찔레순은 봄의 약속이었다.
햇살보다 먼저 올라온 여린 줄기를 꺾어 씹으면, 쌉쌀함 끝에 은근한 단맛이 돌았다.

 

한 친구는 “씹을수록 꿀맛”이라며 잘난 척을 했고,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따라 씹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찔레열매를 따기 위해 가시에 찔리는 건 일상이었다.
손등에 맺힌 피보다도, 입안에서 톡 터지는 그 달콤함이 먼저 기억난다.

 

그 작은 열매가 위장을 다스리고 피부에 좋다니,
어릴 적 우리는 이미 약초의 달인이었다.

 

어느 해 늦가을, 형은 삽 하나 들고 칡을 캐러 가자고 했다.
바지 무릎이 다 젖고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땅을 파던 그 날.

 

한참 만에 뽑아 올린 칡뿌리는 햇빛 아래 진한 갈색 윤이 났다.
땀에 젖은 얼굴로 나누어 먹은 칡 한 조각.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달콤한 흙내음과 즙의 온기.
“이게 약이래, 몸이 뜨뜻해져.” 형의 말이 그땐 믿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트 진열대에서 ‘프리미엄 칡즙’을 보며 웃음이 나는 이유다.

 

돼지감자는 사탕 대신이었고,
잔대는 그 특유의 향으로 입을 씻어주는 마법 같았다.
삽주는 처음엔 떫었지만, 오래 씹으면 혀끝이 개운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이건 뱃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거다” 하셨다.

 

그땐 그냥 고개만 끄덕였지만,
지금은 그 말이 입안에서 되새김질된다.

 

심지어 나무껍질마저도 간식이었다.
소나무 속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바삭하게 말려 불에 구워 먹던 날.

 

한 입 씹으면 송진 향이 코끝을 찔렀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 속껍질에 항산화 성분이 듬뿍 들어있다는 걸,
논문이 아니라 몸이 먼저 알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배고팠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던 그 산과 들은
우리에게 가장 풍요로운 식탁이었고, 약장이었으며, 놀이터였다.

 

손에 흙이 묻고, 무릎이 까지고, 입 안이 얼얼해질수록
우리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누군가는 그 시절을 ‘가난’이라 부르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분명, ‘풍요’였다.

 

얼마 전, 백화점 건강식품 코너에서 칡즙 하나를 들어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야, 이건 내가 어릴 때 산에서 공짜로 씹던 거다.”

 

그리고 문득, 혼잣말처럼 한 마디 더—
“그 시절, 배는 고팠지만 마음은 참 배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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