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손에 힘을 꽉 주고 살아갔다.
무엇이든 꽉 잡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월급명세서, 사랑, 기회, 인정…
놓치지 않으려 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쥐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문득 내 손이 자꾸 느슨해진다는 걸 느낀다.
아니, 그냥 다 펴버릴 때도 있다.
그게 바로 나이 든다는 느낌이다.
며칠 전, 물건을 찾다가 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젊은 시절, 나는 분명 저기 있었다.
날카로운 턱선.
방향을 몰라 흔들리던 눈빛.
그때의 나는 달리고 있었고,
지금의 나는 가만히 서서
지나온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요즘 내 시야는 흐릿하다.
글씨는 번지고,
한 문장을 끝내기 전에 앞줄을 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의 색깔은 오히려 선명해진다.
1991년 겨울,
엄마가 삶아준 고구마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었다.
“뜨거워도 먹어. 안 그러면 금방 식어.”
그 말이 왜 이 나이에 가슴을 울리는지 모른다.
나이 드니, 몸은 조용해졌다.
발소리는 가벼워지고,
심장은 쉽게 놀라지 않는다.
대신 마음은 예민해졌다.
작은 말에도 울컥하고,
친구의 안부 문자 한 줄에 눈물이 핑 돈다.
한때는 모두에게 이해받고 싶어 안달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만이라도
내 마음을 들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남보다도 나 자신을.
잘못된 선택, 어긋난 인연,
부족했던 말들.
예전엔 밤마다 이불을 차며 후회했지만,
이제는 그런 날들도
내 일부였다고 말해줄 수 있다.
돈도, 사람도, 시간도
더 가지려 애쓰던 내가,
이제는 ‘남은 것’을 세어본다.
아직 따뜻한 국을 끓일 수 있는 손이 있고,
꽃이 피는 계절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도 남아 있다.
요즘엔 종교에 조금 더 기대게 된다.
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고요 속에서 나를 꺼내주는 방식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내 관점에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물론 그건,
자주 아들과의 대화에서 ‘고집’이 되어 돌아오지만.
“아버지도 틀릴 수 있어요.”
그래, 그 말이 맞다.
그런데도 자꾸 내 말을 강조하게 된다.
나이 탓이겠지.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변형’이다.
단단한 것이 부드러워지고,
빠르던 것이 느려지고,
잊고 있던 것이 소중해지는 일.
이 모든 변화는 불편하지만,
그 안에 삶의 진한 맛이 숨어 있다.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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