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찬 바람 앞에 선 작은 나무처럼 살았다.
겉은 푸르지만, 속은 바짝 긴장한 나무.
쉽게 부러지지 않지만,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은 나를 두고 ‘외유내강’이라 했다.
겉으론 말없이 웃지만, 속으론 내 기준에 날을 세웠다.
“그건 제 잘못인 것 같아요.”
“제가 조심했어야죠.”
익숙한 말들이었다.
실은 그 말들이 마음을 누른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는 상대의 불편함을 먼저 읽는다.
대화의 틈, 표정의 굴곡, 숨죽인 분위기.
그러면 내 감정은 자연스레 뒷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괜찮아’를 입에 단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달랐다.
그들은 ‘말보다 마음’을 먼저 읽는 존재였다.
그들과의 시간은 평화였다.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오갔고,
감정은 눈빛으로도 전해졌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직 아이들과 있을 때만 가능했다.
성인이 되는 순간, 관계는 달라졌다.
말보다 분위기가 앞섰고, 마음보다 입장이 중요해졌다.
나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나누는 성격이다.
정의롭고 원칙을 중시하는 나의 태도는,
때로는 조직 안에서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눈감아야 할 일에 침묵하지 못했고,
공정하지 못한 상황 앞에서 괜한 고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옳다고 믿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 말보다 나의 태도를 먼저 판단했다.
그래서 점점 말수가 줄었고,
정의로움 대신 조심스러움이 자리 잡았다.
한 번은 회의 시간에 조용히 제안을 꺼냈다.
“이 부분은 아이들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료 교사가 내 말을 끊었다.
나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그러나 늘 하던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시 생각해볼게요.”
그날, 퇴근 후 텅 빈 교실에 앉아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억울함도, 분노도 아니었다.
단지 묻고 싶었다.
“나는 왜, 늘 이렇게 말하지 못한 채 돌아서는 걸까?”
그 질문은 그날 이후에도 내 안에 머물렀다.
내가 지금껏 지켜온 평화가
혹시 ‘진짜 나’를 지우는 방식은 아니었는지
문득 두려워졌다.
그때부터 아주 작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짧은 의견을 꺼내는 연습,
작은 감정을 놓치지 않고 말해보는 용기.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도 있지만,
때로는 말해야만 진심이 닿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나는 감성이 이성보다 먼저 달리는 사람이다.
감성은 따뜻하지만, 방향을 잃기 쉽다.
그 감성에 기대어 살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길을 잃는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후회하진 않는다.
양보하며 얻은 관계,
말없이 전해진 온기.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온기 속에 나 자신도 포함되기를 바란다.
말하지 못한 하루가 쌓이면,
결국 나라는 사람 자체가 흐릿해지기에.
나는 여전히 외유내강이다.
하지만 그 ‘내강’은
더 이상 침묵과 인내의 이름이 아니다.
이제는, 내 마음을 말할 용기.
부드럽되 꺾이지 않는 중심.
그것이 내가 다시 짓는
‘강함’의 이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질문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한다.
“흔들리지만, 부러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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