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의 계절
장마가 시작되면
나는 자주 멈춰 서게 된다.
흐름은 삶을 정리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도로 위를 달리던 차들도,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도,
빗속에 잠깐 멈춰 선다.
그리고 나 역시,
멈춰 선다.
물웅덩이 위로 퍼져나가는 동그란 파문처럼,
기억이 번진다.
어릴 적,
그 흐름의 반대편에서 마주했던
작은 생명 하나가 문득 떠오른다.
잿빛 하늘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개울을 스치던 날.
개울물은 겉보기엔 고요했지만,
바닥 아래서는 소리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걸 알 리 없었다.
고무신으로 접은 돛단배를 띄우며
낄낄대던 아이들.
그 중 한 아이의 배는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고,
그 아이는 금세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버드나무 가지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
거꾸로 매달린 청개구리 한 마리.
세상을 반대로 바라보는 존재.
가녀린 다리로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꾸로 선 풍경 속에서
구름은 물속을 유영하고,
아이들은 허공을 걷고,
버드나무는 하늘을 향해 뿌리를 드리운다.
사람들은 그저
그를 '말 안 듣는 개구리'라 말하지만,
나는 그날 알았다.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우리가 외면하는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혼자 다른 시선을 가진다는 건
우습게도
가장 인간적인 일이 아닐까.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진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다들 옳다 말하는 길을 따르고 있지만,
어쩐지 나는 늘 조금 비껴서 걷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게 틀린 건지, 나다운 건지—답은 없다.
그의 물갈퀴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가지에서 미끄러졌다.
‘퐁당.’
한 줄기 소리와 함께
그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살이 크게 일렁이지도 않았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고요했다.
하지만 나는 본다.
그가 다시 물 위로 떠올라
겨우 바위 하나를 붙잡는 장면.
그마저도 흐름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다시금
저 멀리
희미해져 갔다.
햇살이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고
바람이 물가의 풀잎을 쓰다듬는다.
풀잎들은 모두
그가 떠내려간 방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마치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자연의 예절 같았다.
아이들은 조용히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말없이.
조금은 무겁게.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생각한다.
거꾸로 흐르려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세상은 규칙처럼 흐른다.
우리는 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내 마음 한켠은
항상 물살의 반대편을 향한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알고 있다.
그 방향이 나를 더 자주 아프게 만들고,
더 자주 외롭게 한다는 걸.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길이 아니면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정해준 방향을 따르는 것이
과연 옳기만 한 일일까.
그때의 청개구리처럼,
언젠가 나도
어디론가 퐁당 떨어질 것이다.
흐름 속으로 삼켜지거나,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거꾸로 본 세상이
조금 더 선명했노라고.
그 방향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외로움과 실패를 품고 있을지라도,
그 시선 하나로 나는
충분히 살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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