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이 피는 이유를
이젠 묻지 않기로 했다
그저 피었으므로
내가 그 앞에 멈춘 것이므로
돌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다
부서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감춘다는 걸
늦게야 알았다
나무는 말이 없다
그러나 계절마다
입술처럼 잎을 물고 있다
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렀다
그래서 너는 거기 있어야 했고
나는 여기에서 오래 아파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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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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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착 붙는 느낌의 시였습니다.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되뇌어 보는 계기도 되었구요. 꽃이 피는 것을 보는 일이야 세상에 흔한 일인데, 정작 꽃이 피는 이유는 묻지 않았더군요. 꽃을 좋아하는 맘이야 말해 무엇할까마는, 정작 그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지지 않았더군요. 누군가를 사랑해 놓구선 왜 너를 사랑하는 지는 말하지 않았더군요. 왜 꽃은 피는 걸까요? 또, 난 왜 그 꽃 앞에 서 있는 걸까요? 그리고 찬란하지만 열흘을 가지 못하는 꽃 앞에서 왜 늘 무너져야 했을까요? 그리고 다시 긴 기다림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을까요? 세상 생명 있는 존재의 가장 큰 본능은 생존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싶군요. 유한적 존재에게 생존 욕망은 어떻게 하든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려는 것으로 이어졌구요.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도,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생식을 통한 종의 보존 본능에 충실한 것이지 싶군요. 그런데, 왜 하필 그 사랑의 대상이 너이고, 난 너 앞에서 이렇게 아파 해야 하느냐는 이유는 모르겠네요. 사랑을 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는데, 사랑에 눈이 멀었던 거지요. 아무 일 없이 해로에 이르는 사랑이 있을까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또, 태풍도 견디며 땅 굳 듯 사랑도 익어가는 것 아닐까요? 아무튼, 우린 너나 없이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거기 있는 그를 위해 나는 여기서 오래 쫌아파야겠다고들 생각 하지요. 모처럼 좋은 시로 사랑의 생각들을 해 보았군요.
울림 님, 남겨주신 글을 한참이나 머물며 읽었습니다. 시의 행간을 따라와 주신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아픔의 이유’와 ‘생의 본능’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봐 주시니 인생을 통찰해오신 분의 혜안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꽃이 피는 이유를 묻지 않기로 한 것은 어쩌면 그 찬란함 뒤에 숨은 숙명적인 아픔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울림 님 말씀처럼 비바람을 견디며 땅이 굳듯,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여유와 깊이는 삶의 계절을 묵묵히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의 부족한 시가 울림 님의 귀한 사유를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니 외려 제가 더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견뎌내는 이 계절이 울림 님에게도 따스한 여운으로 남기를 소망합니다. 귀한 말씀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